중학교의 또는 고등학교의 당신은 27살, 아니 만 나이니까 한국 나이로는 29세쯤이면 사망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의 천재성과 빼어남과 위대함을 믿고 있던 사람이었다. 본인의 삶이 만만치 않은 것 같지만 자연스럽게 별 문제 없이 해결될 것이라는, 전부 잘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천재들, 그중에서도 음악의 천재가 요절한다는 27세를 넘은지도 벌써 몇 년째인가. 물론 본인이 음악의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중학교때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던 무엇인가의 천재일 것이다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잊고 있지 않았다. 음악의 천재는 27세쯤 죽지만, 나에게 주어진 천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35세쯤 죽고, 요절이라 그룹지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공통점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뿐! 분명 내가 천재인 그 영역은 천재성을 마구 드러낸 후 35세쯤 죽겠지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또 알고 있다.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 아니면 입사에 실패하면서 자신의 능력들의 여러부분을 세상의 잣대에 맞춰보았고 기준을 넘지 못 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물론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였다. 나는 분명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어떻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것이 정말로 무너진 것은 나의 과다 포장된 능력이라는 것이 , 부모에게, 친구들에게 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가능 했던 것이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재가 아니지만, 의외로 세상의 많은 것이 즐겁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 일을 할 때는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을 즐겁게 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즐거움을, 유희를 쫓는 삶을 유지하기에 본인의 숨이 가프고 에너지가 부족하고 삶이 벅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좇는 데에 신체적, 정신적 제약에 대한 감각 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해맑았던 것인가. 아님 그냥 무지한 것인가.

천재가 아닌 우리는, 사람의 정동 상태가 희노애락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희노애락은 우리의 정동상태의 10%는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감정상태에 90%이상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은 반칙인 것이다. 답을 알고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행복하지 않다. 인간의 시샘은 나보다 행복한 것 같은 이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메카니즘을 허락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으로 불행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상태에 놓여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지만 불행하지 않고, 슬프지 않지만 기쁘지도 않고, 화가 나지 않았지만 화가 안 난 것은 아닌. 그런 상태에 많은 시간 놓여져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반짝반짝하는, 본인이 천재라고 믿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삶은 TV나 드라마로 그려지기에는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천재성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애초에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었던가. 아니 평범에도 못 미치는 사람인 것인가 하는 질문에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의 로즈가 떠오른다. 제다이도 아니고 일개 엔지니어에 불과하다. 그런데 별들의 전쟁의 이야기에 난입해서. 이야기에 꽤 많은 지분을 가져가고.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땅으로 내려오게 만든다. 천재이지만, 제다이는 아니고, 공주도 아니고, 우주의 유명해적도 아닌 그녀와. 전직 스톰트루퍼였던 이의 이야기는 .


그렇게 우리는 뛰어난 능력을 어딘가에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천재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능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우월한 정도는 아니었다. 행복하지 않지만 불행하지 않듯이.


당신은 이미 그런 자신을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큰 낙담과 함께 찾아 왔을 수도, 아니면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패터슨의 삶은 어떠한가. 그는. 딱히 행복하지도 딱히 불행하지도 않아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1주일의 삶에 큰 굴곡은 없어 보인다. 부인에게 화가 난 것도 같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예술가’는 넘치는 열정,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 그리고 큰 좌절감. 예술이라는 것은 정말로 그런것인가? 90% 이상은 정적 상태로 사는 우리에게 그런 예술이라는 것은 분리가 되어 있고 멀리 있는 삶인가? 그렇기에 사람은 천재성을 꿈꾸듯이 예술성을 꿈꾸는 것인가?


패터슨은 그렇지 않다고 보여준다. 높이와 폭의 차이가 큰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이들을 우리는 천재예술가로 일컫지만, 그런 예술이 삶에 밀착이 되어 있는 것은 또 아니다. 그런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도 분명하지만. 우리의 매일의 삶은 그런 에너지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천재들이라 일컬어 지는 사람들보다는 능숙하게 에너지를 조절하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실 당신은 천재일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