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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4 A라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 8


 새로 하고 있는 의학드라마 .
 이른 바 약간의 병맛을 띄고 있고 과장된 내용도 많지만.
 밖에서는 우리를 저렇게 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재미나게 보고 있다.

 물론 병원에는 이재룡같은 뜨거운 스탭은 찾아보기 힘들며
 김정은같은 미모의 의사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고
 중환자실의 침대 사이의 간격은 2M도 되지 않으며
 응급실의 진료라는 것의 상당부분은 인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
 작고도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나의 이야기와 겹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 감정이 이입이 된다는 것.
 드라마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싶다.

 
 요즘에 내가 있는 과는 호흡기 내과로.
 주로 폐 쪽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입원하는 과이다.

 이른 바 이야기 하는 폐렴도 있으며 결핵도 있고 폐암도 있고...
 폐렴과 결핵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만성적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이다.

 "숨이 차다" 라는 증상은.
 우리 20,30대에게는 그리 흔한 증상은 아니다.
 물론 예전엔 1.5Km 돌면 숨이 좀 차던게 지금은 200m만 뛰어도 숨이 차기는 하지만.
 
 걷는다고...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숨이 차지는 않지.

 지금 이 과에는.
 
 방 안에 있는 화장실까지만 가도
숨이 차다라는 증상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주된 환자군이라는 것.


 A라는 환자가 있다.

 그가 가진 질병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이라는 질환으로.
 기도의 가장 끝 부분이 좁아져 있어서.
 가래 배출도 잘 안되며 염증도 잘 생기고 하는 질환이다.
 만성이라는 말이 붙었듯이 낫는 병이 아니고 조절해야 하는 병이다.

 예 전에는 다 '천식끼가 있다'라고 표현되었던 병.
 (물론 이게 다가 아니지만 여지까지만 설명 ㅠㅠ)


 A환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급성 발작으로 2달에 한 번은 입원하는 환자이다.
 그의 폐가 가진 능력은 거의 말기에 가까워.
 감기에만 걸려도 급성발작이 올 수 있는 상태.

 단 그의 폐기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치료로 호전이 될 수 있을 정도
 급성 발작의 원인이 되는 염증에 대해서항생제를 쓰고 
 말단기도를 열어주는 흡입치료도 하고 하면 좋아지는 것...


 문제는.
 그 동안 입원시에는 약 2주면 잘 나았음에도
 올 한해에만 근 5번을 입원해서
 이런 저런 항생제를 써서 잘 듣는 항생제가 없어
 이번에 입원해서는 잘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이 느끼는 증상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중이지만 낫지 않고 있으며
 X-ray는 하루 이틀봐서는 크게 차이는 없지만 주욱 늘어놓고 보면 나빠지고 있다는 것.
 숨소리를 청진을 해봐도 쌕쌕거리는 소리가 풀리지 않고 있는...

 지속적으로 코에 산소가 나오는 줄을 꽂고 있지 않으면
 금방 저산소증이 올 수 있고 오고 있는 상황.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이 환자는... 산소도 안 하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리고... 산소를 안 하면서 숨차다고 호소를 한다.
 
 
 "할아버지 산소를 안 하시니까 숨이 차시죠! 산소를 안 하니 가슴이 아프죠!"
 
 "아니 뭐 죄송합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음식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있을 수가 없어요."
 "예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무 차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아니 그럼 방에서 간호사를 불러야죠"
 "아니 뭐 좀 돌아다니까 숨이 찹딥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하루에 4번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방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숨차서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산소하면 좋아지고
다시 밖으로 나오고 그럼 숨차고 그럼 또 끌려 들어가고.


 거기에 주사매니아 여서.
조금만 불편한게 있으면 먹는 약도 아닌 주사를 원한다.

문제는 ...
우리가 줄 수 있는 주사라는게 크게 없다는 것이다.
흡입치료도 거의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으며.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증상 완화엔 좋은 스테로이드도 쓰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Placebo라는 것을 이용한다.
다만 이 분의 경우 먹는 약의 경우 왠만한 소화제는 다 알기에.
의사들이 먹는 약으로 Placebo를 처방할 경우 

 "아니 이 걸 내가 달라는게 아니잖아! 주사 줘 주사!"

...

 
 그럼 어쩔 수 없다.
이른 바 이야기하는 주사 Placebo를 준다.

 생리식염수를 약간 주사하면.
불과 5분도 안되서.

 "역시 주사가 잘들어... 이따가 혹시 안 좋아지면 다시 줘"

...


 분명 이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환자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며.
의사 역시 환자가 표현하는 증상에 대해서 믿음이 약해진다.
 
 

 숨이 찰때.
실제 증상 호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리 식염수 5cc면 좋아졌다고 믿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있어서 정말 아픈 환자라고 생각이 될까?


 문제는.
나와 우리 교수님이야 그 환자가 조금씩 안 좋아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환자의 증상을 엄살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간호사들에게는

만약 정말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간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가 잘 못 된 것일까? 

 내가 오늘부터. 이 Placebo라고 하는. 환자가 생각하는 명약을.

"A씨 당신이 여지껏 맞은 주사는 다 물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하며.

"당신의 병은 물론 안 좋지만 이 주사로도 증상이 좋아지는 건 그냥 기분탓일겁니다 "
"앞으로는 당신이 호소하는 증상에 있어서 필요하다 생각이 되지 않으면 물주사도 없을것입니다"
 하는 게 옳은 것일까?
 

 내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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