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 되어 35세가 된걸 2월에서야 깨달았다는 친구의 말 듣고 '헛헛'하고 웃었는데. 오늘 문득 깨달은건 2004년에 의사면허 땄으니 올 해로 10년째라는거. 그동안 '소송'걸릴만한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니 답답하긴 하네.


물론 의사생활하면서 보람찼던 일이나, 괴로웠던 일들도 생각이 나지만. 첫번째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거. 하지만 그건 내가 잘해서아 아니라 병원의 보호를 받기때문이 크다. 벌써 10년이지만 난 아직도 배우는 입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의대 6년 - 인턴 1년 - 군의관 3년 - 레지던트 4년 - 펠로우 2년.. 이렇게 지나가고 있으니 대략 16년을 투자하고 있는데 딱히 불만은 없다. 혹자들은 너무 오래 걸린다. 힘들다 징징대는 것 같은데. 물론 이해는 하지만, 주위의 친구들 봐라. 다 그렇게 산다고. 이 곳에 와서 본 것은 내가 투자한 것에 비해 나는 여러가지로 많이 받고 있고 앞으로도 많이 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 당연히 중요하고, 내가 필요할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내한공연을 남의 떡처럼 쳐다봐야했던 대학생활에 비해, 공연이 있으면 어떤 제약도 없이 갈 수 있으니...


이제 올 해가 지나 전임의 2년이 끝나면 취직자리를 구해야 한다. 어렸을때야 막연히 대형병원에 남아야지 생각했지만 지금 그런 선택을 내리기엔 머리가 굵어졌고. 인생에선 큰 갈림길은 아니고 사실 대학교 들어가면서 큰 길은 이미 정해졌다. 하지만 작은 길이어도 그 갈림길에 딱 서 있으면 충분히 고민이 되지.


사실, 뭘 선택해도 그 폭이 크지않다는건 알고있다. 더군다나 20대까지 내 스스로를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는 내가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는걸 알게되었다. 폭이 넓지않은 내 안에서의 보수성이라고 해야하나, 예측 가능한건가. 어차피 결론을 내리는 것에 있어서 변수가 많지는 않다. 고민해봤자 뻔한 결론을 낸다는 것.


일단 다른 친구들과 같이 가족이라는 변수는 내게는 없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1인 가구로 살고 있고. 부모님이 계시지만 한달에 몇 번 찾아가고 정액의 돈을 보내드리는 것 이외에 내가 해드릴 것도 없고 하기를 원하시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니 20대에 깨달은건 나는 역시 '게으르다'라는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자기 중심적이다. 무책임하다. 계획이 없다. 이 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면은 없애야 한다는것이 어렸을 적에는 참 짜증도 났지만 뭐 이제는 조절도 어느정도... 성실한 것이 당연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실한 척 해야한다는건 괴로웠지만 지금은 살만한건 내가 그만큼 인간이 되었다는 증거, 불편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굳이 소환하지 않아도 사회생활이 통제 가능할정도가 되어야 편안하다니. 자유의지로 사는 레벨까지는 클리어 못 한 것이긴 해서 아직 인간이 덜 된 것은 맞긴하지만 지금처럼은 사는데에는 충분할 것 같다.


당장 내게 꿈을 묻는다면 그냥 지금정도로 내 가고싶은 곳, 먹고싶은것, 듣고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욕망이 거세된 삶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는 그때 그때 생기는 욕망을 누르지 않는 삶을 계속 살고 싶은 것 뿐이다. 


그렇게, 35세, 의사 10년째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