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욕
 
(老慾) [노ː욕] 발음듣기
[명사] 늙은이가 부리는 욕심.

2012년의 여러모로의 화제의 영화인 '은교'의 이야기를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인 것 같다.
원작이 되는 소설을 직접 읽지는 않았고, 영화도 뭔가 비겁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구석이 꽤 많았던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구석 중에 하나는 과연 이적요는 왜 서지우에게 글을 주었냐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기념관을 만드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이적요가 그렇게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이에겐 서지우를 통해 간접적으로 본인이 죽지않았다는 것을 자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서지우는 스승을 존경하지만, 본인이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이 거래에 뛰어든 셈이고.

물론 이 관계는 간접적인 욕망이 아닌 직접적인 욕망의 대상인 은교가 등장하며 깨어지게 된다. 직접적인 욕망의 대상이 나타나고 스승은 다시 소년이 되었지만, 결국 그 욕망의 대상은 본인이 아닌 대역을 택하게되는 절망감.


벵거는. 
내가 아는한 가장 품위있고, 위트가 넘치며, 젠틀하고, 보수적이며, 낭만적인 감독이었다.
승리를 하였음에도 골이 정당치 않았다며 재경기를 요청한 감독이었고.
본인이 믿고 있는 가치를 필드 위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보수주의자
선수들에게는 합리적인 길을 보여주는 지도자였다.
분명히 '경'칭호를 받았지만 쌈마이 냄새가 나는 퍼거슨과는 다른 우아함
무패우승을 이끌어낼 정도의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구를 보여주던 팀이 바로 벵거의 아스날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만큼 유연성은 떨어지는 벵거, 그리고 아스날.
벵거의 철학에 반하는 팀들이 나타나고, 리그는 흔들린다.
중위권으로 치부되던 팀이 상위권으로 올라오고, 우승을 하고.
쌈마이지만, 그에 맞는 적응력을 가진 라이벌은 유연하게 살아남고.
그 사이 아스날은 리그내의 강자이긴 하나 점점 경쟁력은 떨어지는 팀이 된다.

늙어가는 벵거의 제자들은 떠나게 된다.
비에이라, 베르캄프등 스쿼드 내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노장들이 떠나가고.
아스날의 킹이었던 앙리까지 사라지고 난 후에는.


벵거의 곁에는. 대필이라도 해서 키워줘야 했었던 서지우, 아니 세스크와 아이들이 있었다.

정말로 돈이 없었건, 그의 철학이 변했건.
벵거는 능력있는 어린 선수들을 전 세계에서 긁어 모아 스쿼드를 구축했다.
'로리콤'이라는 이야기를 들을정도의 희롱을 당해야 했지만. 
벵거는 본인이 틀리지 않았음을, 비록 우승은 하지 못 했지만,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벵거의 아스날이라고 불릴정도로. 그 자신과도 같았던 팀은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서.
그는 욕망을 품게 된다.
더더욱...

나도 저 축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이들도 분명히 저 케미스트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적요가 탐내했던 은교의 싱그러움. 아름다움. 
절대 다른 나이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


분명히 몰락하고 있던 바르셀로나는. 어느새 다시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팀이 되었다.
근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자란 아이들. 
바르셀로나에는 전세계의 가장 잘 나가던 에이스 플레이어는 분명히 있었지만
벵거는 그 안의 아이들을 주목하였다. 주욱 같이 같은 나라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같은 축구를 하던 아이들.

대안적인 축구클럽의 모델을 찾고 있던 아스날에게.
가장 고전적인 모습이었던 바르셀로나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것.
경제적인 문제? 팀의 상황? 모를일이다.

흥미로운 이 시절. 
그렇게 벵거의 팀은 분명. 경쟁력은 예전같지는 않지만.
어린 아이들이 아무도 무서워하지않는 축구를 보여줬으며.
떨어진 경쟁력에도 리그 1위를 시즌 중반까지도 유지할 수 있던 시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예전에는 노장들이 떠나갔지만.
이제는 아이들은 떠나간다.
벵거가 투자를 한 경기수로 본인의 명망을 높인 아이들은 떠나갔다.
주급의 문제로, 또는 팀내의 문제로. 또는 이런저런 트러블로.
노장들이 느끼던 팀에 대한 고마움. 또는 부채.
이런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없었다.
이런 로망스를 누르기에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강한 팀은 한 명이 나가도 흔들리지 않지만.
강하지 않은 팀은 한 명이 나가면 흔들린다. 아주 많이 ...
벵거의 사랑을 듬뿍 받던, 또는 기대치를 받던 선수들이 나가게되고.


아스날은 이제 우승은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는 이야기로.
이제는 벵거의 정책을 그 자체로 지지하는 사람은 이제 많이 없다.

그 자신도 이미 수정. 브리티쉬 코어라고 부르지만. 
그건 이제 아스날이 전세계에서 축구 잘 하는 아이들을 끌어 올 수 없고. 
와도 다른 곳을 나가는 현실에 억지로 끼워 맞춘 미봉책.

스쿼드의 주축은 전세계의 A-급의 선수를 싸게 데리고 와서.
스쿼드에 어떻게 데리고 온 브리티시 아이들과 구색을 맞춰서...


하지만. 더더욱 무너진다.

거의 대필을 해준, 아무도 믿지 않았던 그 거친 잠재력의 소유자.


팀에 올때의 그 전팀의 트러블.
잦은 부상. 사건 사고. 다시 부상. 

하지만 정말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떠난다. 


그렇게.
무너졌다. 

더 이상 위트넘치는 재수없는 프랑스인은 없다.

속을 드러내지 않고.
녹음기라 할 정도로. 패배와 승리에 다름이 없던 말을 하던 감독이
강팀의 감독이라면 절대로 말 할 수 없는. 

우리는 
1위가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
우승보다는 4위를 해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예상하고 있지만,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감독은.
본인이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스날을 이용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내가 여전히 여기에 제일 적합한 사람이다. 오직 나뿐이다. 


노욕을 넘어서 노추로 가는 그 모습.


정당치 않은 승부였다며 재경기를 요청하던 중년의 감독은.

골이 들어가면 물통을 집어던지고.

악수를 요청하는 상대 감독을 못 본체 지나가기도 하고.



한때 세상에서 제일 거만했던 그 감독의 프라이드는 이미 무너졌고.


그가 보일 수 있는 모습은 아둥바둥 노력해서 4등 턱걸이하는거...


명예로운 퇴진을 생각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왔다.

혹자는 벵거가 없으면 아스날은 망할 것이라 하지만.

은퇴를 앞둔 감독은 본인이 나가고 난 후에도 유지가 될 클럽을 만드는 거 아닌가?

그것이 바로 본인이 주장했던 클럽의 역사와 전통이 아닌가?


(老慾) 노추(老醜)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들려오는 
벵거가 계약을 연장할지도 모른다는 소식과.
기자들에게 화를 내며, 여지껏 보기 힘든 단어들을 내뱉는 모습은.


앞으로도 더더욱 내가 이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적요가 택했던 그 모든 파멸의 길로 벵거도 가게되는 것인가.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