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0시 30분 이후로 점점 들떠졌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간만에 만났으며, 친동생도 함께 했고, 12월에 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술이었다. 술 없었으면 그렇게 들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면 99달러였던 패트론 아네호가 미국면세점에서 사니 44달러밖에 안 해서 이거 하나랑 다른 데낄라를 산 것을 어제 마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대함을 본격적으로 알게된 것은 아마도 비싼 술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였던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도 왠만하면 소주를 안 마시게 되었다. 



아무튼 어제 호기롭게 맥주를 잠깐 마시고 데낄라를 바로 열었다.

아 저 아름다운 병이여...

패트론은 언제나 그렇듯이 훌륭했다. 

꼬리가 있었다면 눈을 본 강아지처럼 마구 흔들어댔을 것이다.

참 단순한 것 같다. 술만 마시면 해맑게 되니.. 

얼마나 해맑았는지 한 병을 더 깠다. 호세꾸엘뇨.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리고 더 깠다. 미친...


택시를 타고 정신을 잃었다 깨보니 집 앞이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택시아저씨가 카드가 안된단다.

택시를 탈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저씨 그 때는 저한테 얘기하신게 아니에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농담에는 때가 있다고 들었고 적절한 때는 아닌 것 같았다.

현금이 없었다. 지갑에는 2천원인가밖에 없었다.

저기 앞에 ATM에서 뽑으라고 아저씨가 권유하셨지만 그 복잡한 프로세스를 술취한 내가 행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갑에는 미국학회 갔을때 뽑아두었던 달러가 있었다.

택시비는 2만 4천원인가가 나왔고, 나는 20달러를 주며 이거로는 안되겠냐고 했다.

아저씨는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5달러를 더 했다. 25달러. 내가 미국 출발할때 환율이면 이것도 남는 장사다.

아저씨가 안된다고 했다. 허허... 이 아저씨 밀당 장난아니네. 라고 술취한 상태에서도 생각했다.

지갑에 남은 것은 100불짜리였다. 오마이... 외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100불도 안된다고 한다. 아저씨 제 정신이에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제 정신이 아닌건 나인 것 같았다.

지갑의 현금을 모두 다 줬다. 달러와 원화 모두.

그 동안 술취한 나를 납치 안 하고 곱게 데려다 주었던 택시 아저씨들에 대한 리스펙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취하는 집 앞으로 왔다.

본가에 가서 새벽에 어머니 산소에 가기로 했지만 김유신의 말처럼 택시는 나를 이 곳으로 데리고 왔다

이런 ... 씨8


멀쩡한 정신일때도 나는 도어록을 잘 못 연다. 어려운 프로세스이다.

술에 취해서 도어록을 못 열어 30분씩 고생한 기억이 많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제는 추웠다. 밖에서 떨면서 '삑삑삑삑'을 계속 누르기에는 술취해서 업된 나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문을 발로 찼다.

차고서 후회했다. 아 이 신발 내가 진짜 아끼는건데. 얼마나 아끼면 비가 올 것 같으면 무조건 안 신는데.

신발에 문에 있던 '지지'가 묻었다. 이런 씨* 망했네! 하면서 한 번 더 찼다.

주인집에서 이 소리를 듣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집은 5층이라 절대...

문을 더 차면 신발이 더 망가질 것 같아 그만뒀다.

택시아저씨에게 100달러도 넘게 줬는데 세상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했다. 대안을 찾을정도로 나는 술이 좀 깼다.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병원에 술취해서 가서 가드에게 잡힌 전력이 있었지만 괜찮다. 오늘은 좀 깼다.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술에 취해있었지만 새벽 4시 반에 도어록을 못 열어서 직장에 가서 잔다는게 좀 챙피해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그냥 노래를 부르는게 더 챙피하네 허허...


걸으면서 생각했다.

할머니가 나쁜 친구 사귀면 안된다고 했을때 늘 '제 친구들은 다 착해요 내가 제일 싸가지가 없어요'했는데.

나쁜친구가 누군지 알았다. 술이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술도 착한 것 같았다. 싸가지는 술보다는 내가 없지..


아무튼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당직실에 누워서 잤다.

열시에 회진을 돌자고 했었기에 병원에서 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오후 1시에 일어났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