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정에서



지난 주말에는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11월부터 12월에 동남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결국 본인의 의지박약과.

휴가를 빼기 쉽지 않았던 환경.

그리고 동반자 항공권에 관심을 넘은 행동을 보여준 이가 없었기에.

결국 12월은 술을 먹으며 지냈고. 결국 해가 지났다.


본래는 따뜻한 곳 아무 곳이나 괜찮았기에 부산으로 가려했으나.

그래도 부산보다는 제주라고 추천해주는 이가 많았으며.

게스트 하우스의 천국이라는 제주.

얼마전에 내일로 여행자가 제일 많다는 여수와 순천에서

괜찮은 여자분을 만났다는(그냥 만나기만 함) 동생의 말은.

결국 나를 제주로 이끌었다.


제주는 그래도 우리 나라 여행으로는 제일 많이 갔었다.

친어머니와의 마지막 가족여행이 제주도였고.

대학교친구들과의 졸업여행이 제주도.

그리고 작년과 재작년은 학회차 갔다가 하루정도 돌아본 것.

백록담도 오르고 했었기에. 어디를 가야하나 했지만.

막상 검색하고 읽어보니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문제..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지. 왜냐면 나는 게으르니까...

휴가 2일전에 비행기표를 구매해서 비쌌지만.

그 차이가 서울에서 주말동안 쓰는 돈 정도였기에 진행.

게스트 하우스는 첫 날은 애쉬버튼의 사랑꾼님과.

그리고 렌터카는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최저가로. 미니쿠퍼 컨버터블을..


휴가 가기 전 날

3일이지만 그래도 내일 논다고 펍에 가서 술을 마시다 보니 4시 귀가.

비행기 시간은 11시 30분이기에 맘 편히 자고 일어나 보니 10시.

앗! 빨리 준비하자 하고 하면서 핸드폰의 일정을 보니 비행기는 아홉시 반 비행기...

엥?? 뭔소리야, 열한시 반이잖아! 했는데.

알고보니 짧은 시간동안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헷갈려서

제주에서 렌터카 예약이 열한시 반인데 이걸로 시간을 잘 못...


순간. 

'아 무슨 제주야. 그냥 집에서 더 잠이나 잘까?' 

잠시 생각했으나 그래도 공항이 가까워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저기요 제가 아홉시 반 비행기였는데 시간을 깜빡해서 늦었는데 혹시 다음 비행기로 바꿀 수 있나요?"


(직원이 황당해 하며) "손님이 타실 예정이던 비행기는 김포공항의 안개 및 미세먼지 관계로 오후 한시 반에 출발 예정입니다"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포에서 연착되어 북경에서 트랜스퍼를 못 해 거기서 자고 이탈리아에 하루 늦었던 등등의

예전의 여행의 흑역사들이 떠오르며 이렇게 한 번 보상 받나.

나의 인생에서 중간 중간의 불운의 화살표는 있지만 역시 전체의 벡터의 방향은 행운이지라고 생각하며.

정오 해장을 하러 

개화산 원조 나주 곰탕.


하지만 한시반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더욱 연착이 되어 두시가 되어 출발을 했다.

좀 흥미로웠던 것은 뒤의 내 나이 또래 또는 약간 더 드신 여자분들이었는데.

정말 독설이 대단했다.

'김포공항은 네시간 연착인데 이 저가항공들은 여섯 시간이라니까'

'에휴 돈 없는 우리가 참아야지 뭐 어쩌겠냐'

'너는 언제 왔니? 나는 여섯시간째야. 이럴 줄 알면 반가만 낼걸 흥흥'


등등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잘 못 한 건 없지만 죄책감이.



아무튼 비행기는 그래도 3시에 제주에 도착을 하고. 렌터카를 찾아서 일단 주행하다 보니.

저녁 시간을 훌쩍 넘어 일단 첫날 묵을 서귀포시에 위치한 '슬리퍼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저녁이면 돈을 모아 가볍게 파티를 한다기에 식사는 안 하고 갔더니 

족발, 치킨, 회 등등으로 포식을 헐...

뚜껑을 열어보았다

파티에 참가 인원은 총 6명으로 성비는 남자 다섯, 여자 하나.

여자분은 내일 남자친구가 오기로 했다고 하여 사심을 완전히 버리고 열심히 남자애들과 대화를 했다.

이번에 수능 보고 고 3인 친구들은 대학을 이렇게 가는게 맞는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만 듣는 것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것이.

내가 그냥 까먹고 있었던 나의 과거 흑역사들을 다시 소환한...

그때는 왜 그렇게 술로 누구를 이기고 싶어했는지. 하하.

친구들보다 야한 비디오 몇 개 더 보고 그런게 뭐가 중요했는지. 하하

그 친구들에게 그런거 다 부질없다고 이야기하려 했으나 스탑.

그들에겐 그런 세상이 소중한거고 나는 그 곳을 떠나왔다고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이중섭 거리의 서귀포 극장

이렇게 첫째날은 정말 여행지는 단 한군데도 가지 않았다.

아무리 연착이어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며 여행지 코스를 짜보았는데. 

내가 봐도 불가능해서 그냥 이번 여행은 맘편히 돌아당기기로 했다.

포기가 너무 빠른 감이 있긴했지만...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곳은 아예 서귀포시의 올레 시장 한 가운데였다.

여기는 나름 이중섭 거리가 걸어서 3분정도 밖에 안되는 곳이었다.

이중섭 거리로 향해서 이중섭 미술관 및 생가로 향했다.

생가라 하지만 사실 이중섭이 제주에 산 것은 1년여밖에 되지 않...

미술관에도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중섭 화가의 부인인 일본인인 이남덕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는.

절절함, 그리움,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걱정으로 편지를 보는 내게도 그 감정이 묻어나왔다.  

남편이 편지를 안 받아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


잠시 그림을 보았으니 다음은 역시 먹부림.

서귀포시의 서쪽에 있는 산방산과 산방온천 그리고 인근의 산방식당을 타겟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산방식당이 문을 닫았다... 1월 15일부터 1주일정도를 닫는다고.

밀면과 수육을 타겟으로 움직였는데. 망... ㅠㅠ

그래서 일단 다시 산방산을 향하며 식사를 중간에 하기로 수정.

다행히 중간에 밀면집이 있어 똑같이 먹었는데. 역시 제주라 그런지 수육의 퀄리티가 굳!


수육을 찍어야지 왜 밀면을 찍냐

예전 기억에 용머리 해안을 보고 

'저기가 산방산이고 저기에 절이 하나 있어요' 하고 지나간 기억이 있어.

이번엔 산방산을 약간 오르기로.

산방산을 오르면 서귀포시의 서남쪽이 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

역시 잘 안 보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산방덕이 이야기

산방산은 용암

(인용)


옛날 산방산에 산방덕이라는 여신이 살았다. 

산방덕이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인간세상으로 나온 산방덕이는 고성목이라는 청년을 만나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정 고을 사또가 산방덕이를 보고 그만 그 미모에 반하고 말았다. 

사또는 없는 죄를 씌워 고성목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는 아내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고성목은 끝내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일이 어렵게 되자 사또는 산방덕이마저 잡아오게 하였다.

  

그때 마침 산방덕이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인간 세상에 나온 탓에 죄 없는 남편이 고초를 겪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는 산방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을 탄 포졸들이 산방덕이를 뒤쫓았다.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산방덕이는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되고 말았다. 

돌이 된 산방덕이는 사람이 되었던 것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산방산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이 바로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한다.

산방덕이는 돌이 되어 바다를 보았을까 싶다


여기 산 중턱에 가면 산방굴사가 있는데 거기에 물이 떨어지는것을 받아 마시게 해 놓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산방덕이의 눈물이라는데.

뭐에 좋다는지는 모르겟지만 일단 원샷했다.


탄산온천. 물을 먹어볼 용기는 없었음

이번에 제주 가서 처음 안 것은 제주에도 온천이 있다는 것인데.

탄산온천인 산방산탄산온천이 바로 그 곳이다.

이 여행으로 유명한 제주에 탄산온천이라니 아주 유명할만도 한데 그동안 몰랐... ㅠㅠ


다른 온천들과 달리 특이한 것은 

지하에서 올라온 탄산수를 너무 가열을 할 경우 탄산이 날라가니.

탄산수는 그냥 31도정도로 그대로 두더라는... 

처음 들어갈때는 약간 차네~ 정도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은 정도.


원체 온천이나 이런 곳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오랜만에 갔더니.

물에 들어갈때 아주 작게나마 '어허~'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뭔가 좀 슬펐음.

그런데 또 그 물 담근 상태로 한 10분을 잠들어 버렸음....



온천도 봤으니 이제 다시 자연으로!

언덕이 넓게 있는 성 이시돌 목장으로 갔다. 

이제 와서 보면 완전 루트를 잘 못 짠거지만 ...

성 이시돌 목장에는 당연히 소들은 나와 있지 않았다. 

춥잖아.

성 이시돌 목장

성 이시돌 목장이니 역시 천주교에서 하는 곳이어서

나름 세례받은 사람으로서 좀 돌아보려다가.

무슨 사제 서품 받고 막 이런 분위기라 다시 냉담하는 마음으로 움직임.



이 다음에 간 곳은 김영갑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추천한 곳이었다.

더군다가 갤러리라니 숨겨왔던 나의 허영심도 살짝 자극이 되고.

문제는 애초에 성 이시돌을 갔으면 안됬는데 간것인지라.

갤러리에 갔더니 문 닫았음. 하하....


이후에 나는 패닉에 빠지게 된다.

해는 저물어 오고.

원래 묵으려 했던 A 게스트하우스는 연락해보니 리모델링.

B 게스트 하우스는 만실

C 게스트 하우스는 현재 위치에서 2시간 거리

D 게스트 하우스는 전화 안 받음.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에 검색이 된 곳은 짝 게하...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지만 늘 이야기는 많이 들었기에.

한 번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 위한 취재 목적으로 가볼까 했으나

바베큐 파티때 '1호' , '2호' 이런 이름표 붙이고 논다고 하기에 안 갔음.

물론 부정적인 후기도 한 몫했고. ㅎㅎ


옥돔정식을 먹으니 정신이 들었다

결국 일단 저녁을 먹으며 생각하기로 했고.

다시 움직여서 찾아간 곳은 4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집... 하하...

그나마 인근에 돌아다니다가 

'전복해물뚝배기'를 보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옥돔구이'를 시켰지...



한마리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보니.

주위의 다른 모든 일행들은 흑돼지를 먹고 있었다...


...


밥 먹으며 결정을 내렸지.

전날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로 다시 가기로.

전날 뭔가 실망스런 나를 매니저가 위로하며

내일은 여자분들은 3분정도 오실거에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저녁을 먹은 표선에서 35km을 이동해서 와보니. 조용하더라 ㅎㅎ

예약들을 취소하셨다고..

내가 뭘 잘 못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ㅎㅎ


뭐 술 마시고 노는게 목적이지 생각하며 

앞의 시장에서 갈치회, 고등어회에다가 소라를 샀다.

거기에 한 분이 멍게를 쏴서.

본격 소주 안주를 사놓고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물론 한라산도 마셨지.


이날은 나 말고는 게스트가 한 명이었는데.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 하다가 정리하고 온 친구였는데.

정리하고 온 이유에는 거기서 만났던 여자도 한 이유가 있다고.

그렇게 붙어다녔지만 자신에게 맘을 열지 않던 그녀가

과연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관계에 대한 모험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 모험을 왜 제주 도보 일주로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우리는 2차를 가고. 3차를 가고.

맥주를 마시고 소주를 마시고...

갈치회 & 고등어회 ㄷㄷㄷ



결국. 나의 마지막날 계획도 무너졌...

아니 사실 애초에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오름으로 갔다가

다시 김영갑 갤러리에 가고. 밥을 먹은 후에

돌문화 공원을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김영갑 갤러리 정원. 추워 보인다. 봄엔 꽃이 핀다고.

일어나서. 김영갑 갤러리에 갔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정원은 겨울이라 꽃이 피어있지 않았지만.

갤러리에서 느껴지는 김영갑씨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진에서 느껴지는 제주에 대한 김영갑씨의 애정.

더불어 원체 그 건물이 학교였기에 느껴지는 익숙함까지.

무인찻집은 멋이 장난이 아님

무인찻집의 낡은 전축에서 나오는 KBS FM도 멋졌다.

다만 사진 하나가 좀 그랬지만 ㅎㅎㅎㅎㅎ



다음은 역시 식사.

제주 왔으니 오분자기 함 먹어야지 싶지만.

오분자기가 아닌 전복을 파는거 들었다.

전복뚝배기냐 전복돌솥밥이냐로 고민하다가.

역시 전복뚝배기는 서울에서도 흔치않고 보기에 돌솥밥으로. ㅎㅎ

전복돌솥밥에는 생선이 반마리 뙇


오름을 가는 길에는 뭔가 안타까움이 들기 시작했다.

걸어가야 할 길을 차로 오르고.

애초에 올라가기로 했던 곳이 아닌 곳을 가고.

도망치듯이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겨울 바다로 가자~


공항으로 향하면서. 발동된 허세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바다로 가고.

결국 7도의 온도에 바람이 쌩쌩부는 해안도로에서 차의 뚜껑을 열기로..

마침 랜덤재생한 노래는 전람회의 '취중진담'에 이은 '기억의 습작' 

진짜 선글라스만 있었으면 담배도 한 대 물고 노래 불렀을텐데... 


앞의 2일간. 술 마신 애들이 10대 남자애들 그리고 도망온 30대이긴 하지만.

취하고 다시 못 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나에게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새삼 나는 술 뒤에서도 얼마나 숨는 사람인가가 다시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렌터카 반납시간은 지나있었고. 비행기 출발시간은 40분 남은.

뭔가 끝맺음을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바로 서울로 왔다. 


새 직장은 그래도 2주에 한 번은 토,일 2일 쉬니까.

언제든지 안 좋다 싶으면 다시 와야겠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