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매일 경기도로 출퇴근 하는 인간이 뭔 소리인가 싶은데.

오전 6시 기상, 준비, 출근, 근무, 오후 6시 퇴근, 집 도착, 식사, 취침.

여기가 경기도인지 서울인지 제주도인지 알 수 없는 그냥 진료실. 

주말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

집에서 뒹굴뒹굴, 홍대 가서 밥 좀 먹고 만화 좀 보다가 술 마시기.

여기는 홍대일수도, 도봉일수도, 종로일수도 있는 것.


잠시동안 이런 일상을 좀 깰 수 있었다. 일상 + 알파가 생겼었다. 

단순히 일상을 벗어남이 아니라, 여러 의미로 행복했다. 즐거웠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나 자신만을 생각치 않고 다른 사람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지만, 즐거웠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끝을 보았을때.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을 하러 출근을 하는 것도, 일이 끝나 퇴근을 하는 것도 괴로웠다. 

원망을 할, 욕을 할 타인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시간동안 관계의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겉돌고 끝났다.   


서울에, 내 집에, 또는 친구들과 매주 보는 익숙한 장소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익숙한 장소에 있으면, 폭주를 하고, 잠시 즐겁게 떠들고, 술이 깨면, 매우 우울해 할 것이었다.


전주, 속초, 부산, 제주도를 놓고 고민을 했다. 

제주도를 가서 개새끼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으로 살기 위해 참았다.

속초를 가면, 그 사고가 났던 군의관 생활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냥 순수 먹부림을 하기 위해, 전주를 택했다. 

다행히 전주, 서천에는 대학동기들이 살았다. 


순수하게 먹으러 갔다. 

그리고 많이 먹었다. 세끼 + + + + 



날은 꽤 맑았다. 바로 그 전 날에는 비가 왔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바로 출발하려 했으나, 집 꼴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양이하고 함께 사는 집이고, 이틀동안 혼자 있어야 할 고양이 생각에 좀 치웠다.

치우다 보니 1시간이 걸리.. ㅠㅠ 그래도 오전 8시에 출발했다.

전주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는데.

도봉 출발 -> 동부간선 -> 경부고속 -> 천안 논산 -> 전주 

중간 중간 막히기도 하고, 뻥 뚫리기도 하고.

뻥 뚫린 곳에는 주위 차들만큼 밟아봤는데 대략 180~190 ?

160 밟으면 부들부들대던 전 차와는 달리 이 차는 큰 문제는 없었다.



전주에 도착하면 순대국밥부터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출발했다.

지난번에 전주에 갔을 때 결국은 먹지 못했던 ㅠㅠ

남부시장의 조점례 순대국밥을 먹었다. 

사람은 진짜 많더라... 허허

순대국밥 + 피순대 시켜서 먹었는데. 양이 꽤 많아서 남기고.

피순대임에도 의외로 맛이 꽤 깔끔했다. 깔끔한 맛을 위해 뭘 얼마나 넣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남부시장에 주차를 했으면 이제 그냥 돌아다니면 된다.

남부시장에서 걸어 나오면 바로 보이는 풍남문.

풍남문을 지나면 풍남광장이 보인다.


이 곳에서 좀 웃긴 행사를 했는데 조선무과 전주대회라는 것을 했다.

아마 내가 도착한 시간은 리허설 시간.

연습을 하고 무대에 잠시 오르고 했었다. 

그러면서 체험음식이라고 막 주먹밥 줄 서서 먹고 그러던데. 좀 웃겼음.



사실 내 시선을 더 끈 것은 위의 광경들이었다.

조선 무과 대회 옆의 세월호 플랭카드와 초고속 인터넷 접수 플랭카드.

조선 무과 대회 행사하는 바로 옆에서는 세월호 관련 시위 천막이 있었다.




그리고 길 건너에 전동성당 건물을 보고.

남부시장에 주차해 놓은 차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전주 내려와서도 사실 뭘 해야겠다는건 저녁에 동기 만나기로 한 것밖에 없었는데.

전동성당 - 한옥마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결정!


전동성당은 꽤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 성당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검색해서 암)의 1914년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하니 100년이 넘은 성당이었다.

안에 들어가보려 했는데 마침 토요일이니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멋진 성당을 배경으로 하객들도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뒷뜰로 가보니 무슨 조각이 있기에 오. 저건 뭐야 하고 가보니.

바티칸에서 보았던 거대한 피에타상이 ㄷㄷㄷㄷ

냉담자 생활을 하는 주제에 간만에 미사나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정덕분에...



전동성당 바로 건너편에는 경기전이 있다.

사실 가기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고, 한옥마을 들어가는 길에 발견함...

태조 이성계의 어전(초상화)를 모시는 곳이 바로 이 곳 경기전이었다.

뭐... 기억해보면 전주 이씨 아닌가...


마침 내가 간 주에는 조경묘라고 전주이씨의 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곳을 여는 날이었다.

잠깐 보고, 궁중음악 연주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후는 한옥마을 투어.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왠지 '태국'의 도시인 '빠이'가 생각이 났는데.

뭐 별다른 이유는 없고 곧게 난 길에 차 없이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뭘 계속 먹고 있는 걸 보니까..


나도 이 뭔가를 먹고 돌아다니는 무리들에 동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구경을 하며 다녔다.

아니 저걸 왜 여기와서 먹지 싶은 것들(꽈배기, 감자튀김)도 있었지만.

역시 이런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건 괴식 아닌가.


내가 첫번째로 맛본건 전주비빔밥 고로케.

고로케를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고로케 가게를 보고 들어갔는데... 이런 괴식이...

뭔가 신선한 나물을 먹는 맛에 먹는 비빔밥을 고로케 안에 넣으니.

역시 맛이 없었다... 그냥 김치 고로케나 먹을걸...


다음은 지팡이 아이스크림. 

이거 여기저기 많다는데 난 처음봤다 ㅠㅠ 

전주임실 치즈 + 초코렛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왜 저런 지팡이 과자에 넣어야 하나 싶었지만...

다 먹었음. 덕분에 혓바닥 벗겨지고.... ㅠㅠ




먹부림을 하다보니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는 내 대학 동기인 성호.

그리고 성호와 같이 제일 친했던 친구인 기방이가 대전에서 내려와서.

셋이서 같이 1년을 살았고, 각각은 1~2년씩 살았으며, 같이 살지 않을때도 늘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간만에 모임.

사실 대학때는 우리를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관우장비라고도 불렀다...

유비관우장비인 이유는 그 당시까지 우리만 솔로였기에... 


간만에 셋이서만 모여서. 온갖 B급 단어를 내뱉으며 저속한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앞에 놓인 한정식을 폭풍 흡입하면서. 

정말 대학교때의 그 humble하게 살았던, 살 수 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의 우리였는데.

상이 꽉 차게 나오는 음식들을 먹을 정도로는 좋아졌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역시 기방이가 결혼을 했고, 와이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1/2병 마시는 성호는 운전을 해야하고, 1병정도 마시는 기방이는 대전으로 컴백 예정.

물론 나 혼자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안타까워서.

2차를 가서는 기방이를 취하게 만들어 대전을 못가게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나는 아니기에 기방이는 별 문제 없이 갔다.

물론... 집에 가서 좋은 소리는 못 들었겠지.


좀 웃겼던 것은 성호가 고양이를 한마리 키운다는거...

역시 혼자 사는 남자도 어쩔 수 없이 고양이의 노예가 되는건가... ㅠㅠ



다음날 아침 성호는 출근이었다.

식사를 같이 할 시간은 없었고, 이에 나는 바로 성호네 집에서 나왔다.

그래도 어제 술 좀 마셨으니 아침은 해장. 역시 전주의 해장국은 콩나물 해장국

이곳저곳 검색해보다가. 그냥 왱이집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역시 전주인지라. 김과 계란이 나왔다.

옆자리에 앉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먹는거지?' 하더니 계란을 바로 해장국에 투척하려하기에.

그게 아니고 김을 여기 뿌리고 국물을 넣고 그냥 드세요라고 말해주려 했으나.

뭐 그렇게 먹는것보다 저렇게 먹는게 더 맛있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였다.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고 보니 어렸을적에 고기를 싸먹는거나, 김밥을 먹거나 하는게 뭐하는 짓인가라 생각하고 행동했었다.

고기를 상추에 싸먹지 않고. 그냥 고기 따로, 상추 따로...

김밥 엄마가 만들때. 김밥 안 먹고 그냥 햄따로 밥 따로 김따로...

지금 생각하면 꼬맹이 주제에 참 재수없었던 것 같기도.


그리고 이동하여 유명한 백일홍에서 만두와 찐빵을  먹으러 이동했으나 fail.

일요일은 문 안 여는 것 같더라 ㅠㅠ

어쩔 수 없이 이동한 곳은 '동포만두'

집에서 냉동만두나 먹던 요즘인데 꽤 괜찮은 만두를 오랜만에 먹었다.

김치 반 + 고기 반 해달라고 했더니 손님이 아직 없어서 그런지 해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이 곳. 예수병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나를 본 사람들은 절반은 나를 전라도 사람으로 본다.

태어나서 100일까지만 전주 살았고, 나는 전라도에서 살아본 적은 한번도 없는데...


다만 부모님이 사신 곳은 전라도. 나의 본적도 전라도 정읍.

물론 아버지는 고등학교때부터 서울생활, 어머니도 서른전에 올라오셨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곳은 전주의 예수병원. 

태어나서 100일까지 살았던 곳도 전주.


어머니도 돌아가신지도 이제 20년이 넘었고, 외가댁 식구도 전부 수도권에 살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변화 없다.


내가 태어난 예수 병원을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언덕 위에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듯한 병원에 79년의 그런 흔적은 전혀 없는 듯 싶었지만. 



전주에서 나오면서 다음 경유지를 결정해야 했다.

물론 서울 오기전의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군산으로 갈 것인가. 익산으로 갈 것인가로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군산은 언제 또 갈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익산으로...


물론 익산에서 한 일은 별로 없었다.

'황등비빔밥' 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육회 비빔밥을 먹으러 익산시 황등면에 찾아갔다.

육회 비빔밥이 꽤 저렴한 과격에 꽉꽉 나와서 만족도가 매우 높았고, 

국물은 맑은 선지국... 캬...

순대를 만들어 놓은걸 상 위에 놓은 걸 보고 좀 사려다가... 포기. ㅠㅠ


그렇게 서천으로 가려다가 '익산 온천랜드'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정말 즉흥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차를 몰아 갔다.

온천물이 나오는 곳이었지만... 시설은 그냥 동네 목욕탕같은..

수영복을 입고 할 수 있는 야외탕이 있다지만 거기 나갈 온도는 안되었다. ㅎㅎ



그렇게 마지막 목적지인 서천으로...

서천에는 몇 년에 한 번씩은 가는데. 그 곳에는 대학동기인 종영이형이 있기때문.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좀 실수를 한 것이.

간다고 말만 하고 몇시쯤 도착하는지 말을 안 했.... ㅠㅠ


서천에는 이 맘때쯤에는 꽃게 전어 축제라는 것을 한다.

이번에 한 번 처음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에 일정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 나는 이 전어, 꽃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고. 사실 먹으러 가는건 대하.

전어는 뭐...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축제를 하는 홍원항에 갔더니.

이미 일요일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썰렁했다.

축제의 메인 스테이지에는 타지에서 오신듯한 등산복 입은 아주머니들이 밴드에 맞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술이 많이 취해서인지 박자, 음정 모두 별로였다.

그 앞에서는 삐에로 분장을 한 아주머니가 도와주시고 있었다.

옆에서는 전어를 파는 작은 가게들..

바람도 좀 차게 불고 있으니, 적당히 쓸쓸한 광경으로는 딱이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이것들을 먹었다.

전어구이, 전어무침, 대하구이.

전어회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전어회는 맛이 없더라...


이렇게 먹으며, 시간을 보니 저녁 8시.

이때쯤 출발하면 서해안 고속도로 막히지 않겠지 생각하고 출발을 했다.

안 막히더라. 

주위 차들만큼 속도를 내니 1시간동안 130km 주파... 물론 규정속도 위반. ㅠㅠ

하지만 이후 길이 막혀서 결국 120km를 2시간동안 운전...


집에 돌아와 보니. 고양이는 나를 반기며.

혹시나 하고 보니 3일치를 놓은 식량을 이미 다 먹은 후였다.


고양이도 과식, 나도 과식. 


2일동안 600km정도 운전을 하며,

아이폰의 음악 2000곡을 랜덤 재생을 하고 돌아다녔다.

서울을 떠나, 잠시 친구들과 있었지만 주로 혼자, 맛있는 것들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그닥 맘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다만, 2주후, 토요일에 출근 안해도 되는 주말에 또 다시 어디로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