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쯤이었나? 한참 일하고 있는데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었다.

"과장님 응급실에 사체가 도착했는데, 검안 좀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지 좀 오래되셨는지 주의해달라고 하시네요"

"예"


의사가 하는 일 중에 사망선고도 있지만 검안도 있다.

말그대로 사망하신 분을 눈으로 확인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것.

그동안 검안 이나 사망 선고를 하면서 저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응급실로 갔는데, 처치실에도 사체는 없었다.

"과장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차에서 내리지를 않았다고 하네요"


앰뷸런스에 가서 뒷 문을 열어보니,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사체를 덮고 있는 이불을 들췄더니 나타난건 말라붙어서 미이라현상이 진행이 된 사체.

뭘 더 확인할 것도 없어서 검안서를 바로 작성을 했다.

집에서 저 상태로 발견이 되셨다고 한다.

그동안 검안을 하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퇴근길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 나의 삶에서 일을 하는 외의 시간은 홀로 있는 시간이다.

평일에는 6시 30분 전일어나서 출근.

아침 식사는 병원에서 간단하게, 다이어트 중이니 밥은 조금만.

점심 식사는 플레인 요구르트와 과일로.

저녁 식사는 병원에서 먹거나, 집에 와서 가볍게 요리를 해서 식사.

책 좀 읽고, 음악 좀 듣고 대략 11시 ~12시 쯤 취침.

주말에는 오전에 출근했다 퇴근하면 낮잠.

저녁시간 무렵에 외출해서 술집에서 가서 술 한잔.

일요일은 오전에 일어나서 땡기면 청소 및 빨래 후 땡기면 가볍게 외출.


대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생각해왔던, 저녁이 있고, 여유가 있는 그런 삶을 누리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단조로울 수는 없다.

물론 직업 자체가 꽤나 다이나믹한 일이니까. 근무 시간에는 그닥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데.

직업의 생활은 출퇴근 시간까지 해도 대략 12시간.

그 외의 12시간은 나홀로 참 안정적으로 재미없이 살고 있다.


역시 이런 삶에는 연애이지만, 그건 좀 해보려다가 망했고.

운동을 시작하기엔 체중이 늘고 나서 생긴 허리 통증과 발목통증이.

베이스나 다른 것을 배우러 다니기엔 오래 할 것 같지가 않으니.

집에서 손만 까딱하면 할 수 있는 독서와 음악듣기만 하고 있다.


퇴근길에 그렇게 저녁에 뭘 해먹어야 하나 생각을 하며 그 사체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인터넷이 아니면, 퇴근부터 다음날 출근까지 아무와도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체 살며

만약 나에게 작은 사고가 생기거나, 또는 맘을 먹고 생을 스스로 마감을 하거나 한다면.

결국 나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발견이 될 것이 아닌가.

가족과 연락을 자주 주고 받지는 않으니, 아마도 직장동료들이 이상함을 깨닫겠지.

물론 벌써 8년전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언제 죽어도 별로 후회할 것은 없이 살고 있다.

다만 그건 내 생각이고,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다르겠지.


어쨌건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 집에 와서 이것저것을 뒤지겠지.

빈약한 책장에는 우울한 내용들의 만화책, 그리고 컴퓨터에는 다수의 동영상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저게 뭔가 싶은 잡다한 음반들. 그리고 쓰잘데기 없는 것들.

책상에는 샘플로 받고 아직 한번도 써보지 못한 발기부전 치료제.

그리고, 아마도 굶고 있을 고양이.


뭐 그럭저럭 평범한 거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다가, 사고의 흐름은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실에는 썩어가고 있는 양파와 아직 괜찮은 당근, 그리고 먹고 남은 반찬들.

그리고 냉동실에는 소고기하고 인스턴트 돈가스와 만두?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의식의 눈은 냉동고의 필라델피아 치즈 케익을 발견하고.

이건 안되는데. 그리고 보통일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코스트코에서 사온 필라델피아 치즈케익. 

한 박스에 16조각이 들어 있는 그 치즈케익.

아직 그 16조각 중에 2조각 밖에 안 먹었고.

다이어트 중이니 대략 1주일에 기분 안 좋은 날 하나씩만 그 치즈케익 조각.

그 2조각만 먹은 한 박스를 사람들이 발견하게 된다면

'이렇게 삶의 의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하고 생각하며 슬퍼할 것을 생각하니

절반 이상 먹어치워 버릴때까지는 죽기 좀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는데.

그 사이 한 조각도 안(못) 먹었음. ㅋ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