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이 연작은 100% 픽션입니다.>

 


지난 글 보기 :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1>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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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저리주저리 내가 왜 그녀와 헤어지려하는지에 대해서만 썼는데

냉면사건 이후 그녀와 헤어지려 한거지 

그 이전까지 나는 그녀가 나만을 위한 하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의 공유였다.


그녀를 만나게 된건 굉장히 큰 우연이었다.

2011년 7월 나는 로라이즈에 있었다.

정확한 날짜가 생각이 나지 않는 그 날 나는 그녀를 처음 봤다.


그녀의 첫인상은 '미국 하이틴 영화 여주인공의 두번째로 친한 친구'같은 느낌.

여주인공의 첫번째로 친한 친구가 보통 친했다가 틀어지고 하는 사람이라면

두번째 친구는 둘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조정하는 느낌?

사려깊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쎄. 사려깊게 생겼다는게 어떤거냐? 이쁜거냐? 안이쁜거냐?라고 물으면 딱히 답할 수는 없다.

나중에 그녀와 만나게 되고 친구들에게 소개하기전에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말에

'미국 하이틴 영화 여주인공의 두번째로 친한 친구'처럼 생겼다고 말해주니

'개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친구들이 그랬는데

실제 보고 나더니 

'야 네 말 그대로네'라고 하더라.


아무튼 나는

하이틴 영화 빠돌이에, 그 중에도 여주인공의 두번째 친구들의 팬이었기에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 아 . 드디어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그녀의 옆에서 얼쩡거리며, 어떻게든 말을 걸어볼 기회를 잡으려했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왔었으며, 공연 중간 중간 주위를 둘러보며 아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나는 공연장에 혼자였지만, 그래도 기회는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녀를 쫓아가볼까 생각했지만 그쪽 일행은 꽤 많아 어디서든 뒷풀이를 하지 않을까 짐작했다.


옆에서 흘끔흘끔 보니

그녀는 공연 중간 중간 핸드폰으로 밴드들의 사진을 계속 찍고 있었고 그것을 뭔가 조작을 하는 듯 보였다.

뭐지? 하고 봤더니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나는 트위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매일 거기에서 찌질거리고 있었다.

사진을 올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모든건 집에 가는 길에 해결하기로 했다.

아비정전 장국영의 '우리가 함께한 1분' 대사와 함께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나는 쭈글쭈글한 반바지에 슬리퍼, 그리고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얄개들'으로 검색을 했다.

당연히...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이 나왔고, 어렵지 않게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SNS에서 스타였다.

팔로잉은 50명도 안되는데 팔로워는 그 10배가 넘었다.


뭐하는 사람일까? 뭐하는 사람이지? 하고 보려고 해도

인스타그램에는 음식과 밴드들 사진과 셀카 몇개밖에 없었다.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나이는 얼마정도 되는지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트위터는 더 가관이었던 것이 그 날 밴드 사진 하나 올린거 말고는 전부 텍스트였는데

'죽을까?' '말까?' '죽을까?' ' 말까?'가 주된 내용이었다.


사실 이제 생각하면 그 때 좀 뭐가 이상하다 느끼고 발을 뺐어야 했는데

그 때의 나는 그나마 타인에 흥미를 느끼는 남자아이였으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팔로우를 누르고 나는 그녀를 관찰하기로 했다. 


팔로우하고 나서 알고보니 그녀는 트위터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쓰는 글의 일부를 트위터에 발췌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그녀가 링크를 건 블로그에 가보니 그 전문일지도 모르는 글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죽고싶다' '죽지말까'만 이 트위터 계정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글 중에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매우 일부분이어서

아마도 다른 계정을 가지고 그곳에는 다른 내용만 올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트위터 계정에 글을 쓰고 이를 취합해 블로그 글로 옮기는지.

아니면 블로그 글 중에 일부를 옮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이후 나는 그녀의 블로그에 매일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의 글은 감정이 배재 되어 있지만 재미있었다.  

그녀의 블로그에 매일 들어가고 그녀의 다른 트위터 계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게된 것은 '죽고싶다' '죽지말까' 계정 뿐이었다.


트위터와 달리 인스타그램은 한국 여성의 인스타그램 자체였다.

파스타를 먹으면 파스타를 찍어 올렸고.

햄버거를 먹으면 햄버거를.

단풍을 보러가면 단풍을 찍고 있었다.

텍스트로 가득찬 트위터와 달리 인스타그램에서는 좀 더 그녀의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보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사실 그녀가 보는 공연들이라는게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를 처음 본 로라이즈를 간 것도 그냥 밴드를 보러 갔다기보다는 그 공간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한국의 밴드들은 거의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2000년 이후의 나온 음악은 한국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 음악도 잘 몰랐다.


나는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만 들었다.

대학교때 밴드할때는 선배들의 권유(=강압)에 메탈리카도 연주했는데

도저히 어느날은 못 견디겠어서 나보고 기타 못 친다고 욕하는 선배를 때리고 밴드는 그만뒀다.

들려주는 음악의 밴드 이름이 메탈리카에 모터헤드에 메가데스라는 솔직히 좀 구리지 않나?

웃긴건 내가 때린 선배긴 하지만 그를 통해 알게된 레드 제플린은 괜찮았다.

그들의 영상은... 와 저 인간들은 무대에서 섹스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동정이었다. 


어찌되었건, 한국의 밴드 음악을 굳이 들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 날 이후로 그녀와 공연장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다. 

트위터도 인스타그램도 나는 그녀를 팔로우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를 팔로우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스타에서 여름바다를 보고, 가을단풍을 보고, 겨울눈을 보고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까 하던 때에 그녀의 트위터에

"지산에 라디오헤드가 온다고??"라는 글이 올라왔다.

'라디오헤드가 온다니 죽지 말아야겠다'라는 전개를 예상했으나

그 후로 그녀의 트위터는 전혀 다른 글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전부 라디오헤드에 관한.


나는 그녀의 트위터를 보면서

톰요크는 안검하수가 있으며, 나오는 앨범마다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피셜 뮤직비디오가 아닌 라이브영상들을 보게되었고.

톰요크가 오징어처럼 춤을 추는 영상도 봤다.

오징어 댄스는 라디오헤드 팬들에게 유명하다고 써놓았었다.


웃긴건

그렇게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하나 둘 듣고 나는 지산에 가기로 맘을 먹었다.

내가 그녀에게 더 빠진 것인지, 아니면 라디오헤드에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기로 했다. 


사실 나도 라디오헤드는 알고 있었던게 

선배 때리고 밴드에서 나오기 전에 creep이라는 노래를 연주한 적이 있었기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좇같은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은 없다.

병신같이 지 스스로를 creep이라고 하다니 한심한 새끼.

마침 라디오헤드도 그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봤다.

호감도 1 상승.


딱히 국내에 돌아다녀본 적이 없어서인지 지산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트위터에는 전에 지산에서 즐거웠었지 하는 사진들이 올라왔는데 뭔가 신기했다.

내가 더위에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을때 저사람들은 야외에서 저러고 다닌다고?

사실 표를 사기전까지 그 곳에 간다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굉장히 빨리 매진이 되었다는 그 지산 얼리버드 사는 걸 성공했다. 

그녀는 트위터에 자기는 놓쳤다고 올렸지만 가겠다고 했다.

그녀에게 첫 멘션을 보냈다. 

'저도 가는데 가게되면 같이 뵈요'

그녀가 답을 줬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놀면 좋죠~ 으하하!'


나는 그 이후로 라디오헤드를 듣고 또 들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만큼은 아니었지만 좋은 밴드인 것 같았다.

뭐가 좋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지만 메가데스보다는 좋았다.

그러고 보니 모터헤드 비웃어 놓고 얘네는 라디오헤드네 싶었지만 좋은 음악에 이름이 뭔 상관이야!

무당벌레새끼들도 있는데..


어느덧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봄벚꽃이 올라왔다. 

저기는 일본인가?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딱히 어디인지 적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름. 어느덧 7월.

나는 지산에 갔다.

친구들한테 락페스티벌에 갈것이라 얘기를 했더니 그게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자세히 설명은 할 수 없었다. 

혼자 차를 몰고 갔다. 

어차피 술은 마시지 않을것이니까 돌아오는데 문제는 없겠지.

지산 밸리락 페스티벌은 3일이나 한다는데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집으로. 서울로. 


그녀는 지산에 언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산에서의 사진을 계속 올리고 있었다.

친구가 많은 것 같았다. 남자도 많고, 여자도 많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뭔가 활발해졌다.

물론 여전히 설명은 없지만.


차를 몰고 도착하니 라디오헤드 공연에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었다.

딱히 할 일은 없어 돌아다녔는데. 좀 보다가 포기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없었고, 들리는 음악은 시끄러웠다.

정신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떠들며 난리를 치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7시도 안 된 시간에 취해서 뻗어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쟤네는 집에 어떻게 가려고 그러지??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냥 라디오헤드때까지 앉아 있기로 했다.

딱히 이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뒷자리에서.

멀리서 소리나 듣기로 했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다음에 좋아하게 된 밴드 아닌가.

어차피 두 밴드는 볼 수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밴드는 처음 보는 공연.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씩 나도 동요가 되기 시작했다.

어쩌지하다가. 그냥 일단 맥주는 한잔 하기로 했다.



라디오 헤드 공연의 시작.

공연때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비록 알게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 음악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들리는 그 공간.

넋을 놓고 나는 앞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매우 덥고, 사람들은 짜증을 냈지만, 나는 앞으로 앞으로.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제일 앞까지 가 있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더는 서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털썩 주저 앉았다.


문득 그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덕분에 알게된 밴드 아닌가.


고맙다는 멘션을 보내려 트위터를 봤는데


'ㄹ ㅏ 디휴데 볻 ㅏㄱ 울다 ㅊ ㅣ ㅂㄱ 다 못 찻ㄱ ㅔㅆ다' 라고 올라와있었다.


라디오 헤드 보다가 울다가 친구들 잃어 버린건가?


'다 ㅁ 부ㅔ 푸기 시ㅠ읒데 불이 압다'


담배 피고 싶은데 불이 없구나


그녀에게 멘션을 보냈다


'어디시냐? 불 빌려드리겠다'


'ㅇ ㅕㄱ ㅔ 늦 갸욱가'


?? 예 ? 라고 물었더니


"개울갸'


개울가? 물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지나가는 스탭에게 물었더니 있다고...


그녀를 찾아 갔다. 멀지 않았다. 


그녀는 낮에 올린 인스타그램의 옷들을 그대로 입고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울고 있었다. 

왜지? 싶었지만. 일단 라이터를 주려고 하는데.

정말 꺼이꺼이 울면서 고맙다고 내 손을 잡았다. 악수를 했다.


개울가에 앉아 우리는 라디오헤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술은 모자랐지만, 그녀를 놓고 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라디오헤드를 언제부터 보고 싶었는지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

울면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녀도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도 취해있었다.

공연 중간에 옆에 사람들이 내가 오징어춤을 추는걸 보고 좋아하면서 술을 줬었다.

맥주 3잔에 위스키 4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라이터 갖다줘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담배를 한 대도 피지 못 했다.

담배를 손가락에 끼는 족족 떨어뜨렸다. 


그녀는 자기 숙소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고 했지만, 찾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개울가에서 있기로 했다.


나는 1일권만 가지고 있지만, 3일동안 지산에 있기로 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