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소설입니다.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제 이야기 아니고요. 

4, 5 편에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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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보기는 아래 링크 클릭.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1>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2>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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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에 이어>


햇볕에 눈을 뜨니 나는, 그리고 그녀는 개울가 옆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노숙이었다. 

온 몸이 모기에 물려 있었다. 간지러웠다.

여름 햇볕은 매우 뜨거웠기에 나의 살갗은 이미 좀 익은 상황이었다.


"일어나세요!"

"예~ 잘 잤어요? 아유... 또 밖에서 잤네"


그녀가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해서 좋았다.

사실 깨우면서 "누구세요?"가 돌아올 대답일까 두려웠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트위터 팔로워이며, 지난밤에 담뱃불을 가져다 주었고, 사귀자고 한 사람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일부는 기억하고 있었고, 일부는 기억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본인이 라디오헤드에 대해서 2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할 때 그걸 들어준 사람이 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는 어제 처음으로 본 사이 아닌가.


문제는 나의 페스티벌 티켓은 1일짜리였다는 것.

일단 페스티벌 공연장에서 어떻게 더 있어야 하나 생각을 해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노숙을 했는데 하루정도는 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나가서 숙소로 가서 라면이나 먹어요."

"일행도 많고 방도 크니 어떻게 방법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그녀가 제안을 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의 숙소는 지산리조트 밖에 있었다.

아마도 이 지산리조트는 스키장인가 보다.

지금은 여름이니 난 그걸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제 공연을 보니 리프트?라는 것이 많이 있었다.

밖에는 스키샵이 많이 있었고, 스키를 타고 숙박을 하는 이들도 있는지 여관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잡은 손에 이끌려 도착한 그녀의 숙소.

숙소 밖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떠들면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야~ 어젯밤에 어디 있던거야~ 연락도 안되고!"

"어! 오~ 안녕하세요! 남자친구시구나! 역시 그동안 뭔가 이상하더라니!"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방으로 나를 끌었다.

약 15평정도 되어보이는 큰 방에는 1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먹다 남은 듯한 과자, 술 등등이 있었다.

아. 

더러워.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참아야겠지.


"저는 쟤네가 정말 싫어요"

"예?"

"아까 올라올 때 봤던 애들이요. 양아치들. 지네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숙소를 함께 쓰시게 된거죠?"

"그렇지 않으면 페스티벌에 와서 잘 곳이 없는걸요"


그녀는 라면을 끓여준다고 했으나 라면은 보이지 않았다.

구석을 뒤지다 뒤지다 하면서 사람들도 깨우고 했으나 그녀는 정말 이잡듯이 뒤졌고

결국 그녀는 오징어짬뽕 한개반을 찾아서 끓여서 반을 내게 넘겼다.

자비롭군. 

확실히 그녀는 SNS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랐다.


라면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예상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전날의 라디오헤드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상이 얼마나 좋았는지, 톰욕이 얼마나 멋진지, 여지껏 지산에서의 음향 중에 오늘이 최고였는지 등등.

그녀가 트위터에 올리던 라디오헤드 관련 자료들을 통독했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잠깐씩 하는 추임새에 그녀는 더더욱 신나 보였고, 

라면을 다 먹을 무렵에는

"와! 내가 한국에서 라디오헤드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아는 분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라는 감탄사를 들을 수 있었다.

뭐. 그정도야. 

나는 라디오헤드의 위키페디아의 모든 항목을 링크까지 눌러보며 해석해서 읽은 사람이라고. 


라면을 먹고, 세수를 한 후에 그녀에게 다시 이끌려 나왔다.

그래도 매일 옷은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냐고 끌고 나왔다.

마침 숙소 인근엔 이상한 티셔츠를 파는 가판이 있었고 그녀는 'Metallica'라고 씌여진 셔츠를 골라줬다.

아니 왜... 싶었는데 얼굴이 메탈리카같이 생겼다라고 하더니 그냥 입혔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메탈리카가 싫어서 선배를 때린 적이 있지만.

TV에서 보니 남자는 여자가 입혀주는대로 입어야한다고 하더라.  


숙소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공연장 안에 티켓없이 들어가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들은 팔목에 팔찌를 좀 헐겁게 메고 그것을 전달해가면서 들어간다고.

그게 괜찮냐? 안걸리냐? 걸리면 5배 벌금 이런거 내야하는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깔깔깔 비웃었다.

일종의 룰을 깨는 행위를 한다니 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냥 집에 갈까? 

다행히 그녀의 친구 한 명이 어제 공연 끝나고 집에 가서 팔찌를 두고 갔다해서 남는 것을 내가 하기로 했다.


그렇게 옷도 사 입고, 팔찌도 생기고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3시 무렵. 

"앗. 빨리 나가야겠어요. 지금 준비해서 가지 않으면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를 못 보겠네요"

"예??? 뭐라고요?"

"하하하하하 그런게 있어요~"


그녀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동안 핸드폰 보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예 전 K라고 합니다."

"예. 전 H라고 하고요. 저기 들어간 애 친구에요. 무슨 일 하세요?"

"백수인데요."

"아~~~ 그러시구나~~~  쟤 남자친구세요?"

"아. 뭐. 네."

"흐흐 그렇군여.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해요. 저녁에 다시 오실거죠?"


잠시 대화를 나웠고, 나는 H가 개새끼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일부러 백수라고 했는데, 바로 눈빛이 달라지면서 아~~~ 하던.

딱 보니 그녀의 전남친일 것 같았다.

아니 전남친은 아니어도 그냥 잤을 수도 있고.

전남친이고 지금도 자는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 남친이고 뭐고 그녀와 잔 것은 확실하다.


개새끼.

아니 뭐 그녀랑 잤다고 개새끼라 생각하는 건 아니고 

말투, 행동, 저 유치한 옷들, 그리고 그 껄렁껄렁함

일단 H는 멀리 해야겠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을 보려면 올라가야 한다고 법석을 하며 준비를 하던 그녀는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샤워를 마치지 못했다.

그녀가 준비가 끝나고 올라갔더니 지산은 이미 오후였고 공연은 보지 못 했고

나는 또다시 손에 이끌려 여기 저기를 다녀야 했다.


인터넷에서 보던 '죽을까 죽지말까'를 쓰던 모습과 달리 그녀는 매우 활발, 쾌활, 명랑하였다.

어제 밤에 시종일관 라디오헤드 이야기만 하던 모습은 그녀의 술버릇이라 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의 그녀는 A->B->C->A->C 뭐 이런 식으로 3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동시에 했다.

정말 쫓아가기 힘드네라고 생각을 할 무렵 

"K씨는 정말 남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상냥하신 분 같네요."

"아 제가요?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데."

"아뇨~ 메탈리카처럼 생기긴 했는데 상냥하신데요?"

하면서 깔깔대면서 또 웃었다.

아. 나 메탈리카 진짜 싫은데.

그리고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는데. 

그녀가 웃으니 나도 웃을수밖에. 


그녀는 손을 잡았다가 팔짱을 꼈다가 무슨 이야기를 잔뜩하며 앞으로 걸어갔다가 다시 손을 잡았다가

본인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어제 라디오헤드 보고나서 좀 너무 행복하다고.

뭔가 최근에 죽고 싶었는데 괜찮은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 숙소에서 이따가 저녁에 바베큐한다고 들으셨죠?"

"예? 저는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는데..."

"아 아까 제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아닌가? 뭐 어쨋든"

"바베큐가 뭐에요? 고기 부위 중에 그런게 있나요?"

"이분 뭐야~ 바베큐 몰라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해? 아 그냥 고기 구워먹는거요~"


바베큐 이야기를 하더니 

분명 거기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는 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자기네 멤버 중 누가 고기를 잘 굽고, 누구는 캠핑마니아라 뭘 가져왔고.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사실 고기를 잘 굽는 것도 캠핑마니아도 공연 많이 보는 것도 모두 H였다.

그래. 


사실 문제는 H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람들하고 뭔가 먹는걸 싫어한다는 것.

난생 처음보는 사람들과 조리가 다 되어있는 것을 먹는 것도 불편한데. 고기를 굽는다니.

나는 고기를 잘 못 굽기때문에 어딜 가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런 평소의 모습대로 고기를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면.

안그래도 오늘 처음 보고 나를 보는 눈빛들도 별로였는데.

마음 속으로 다들 나를 깔보는 마음을 가지겠지?

괜히 백수라고 했나... 나 무슨 일 하는지 말해야 하나?]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게 중요한가? 

그 개새끼는 나한테 그걸 왜 물어봤지? 


생각이 복잡해서인지 제임스 블레이크라는 애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뭔가 '띙띙 뚱뚱'하는 소리가 나니 엠씨스퀘어같은게 영 취향이 아닌데.

한참 공연 전까지 재잘거리던 그녀가 조용하다.

울고 있다.


뭐야... 이 여자...

내가 빤히 쳐다보니

"제가 제임스 블레이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아 정말 이번에 제임스 블레이크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라디오헤드는?? 톰욕??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핸드폰을 꺼내서 트위터를 보았더니 그녀가 트위터에 잔뜩 적어놓았다.


"너무 좋다. 제임스 블레이크를 한국에서 보게되다니 라디오헤드 꺼져!"


라디오헤드와 제임스 블레이크를 생각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제임스 블레이크를 바라보던 그녀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나를 데리고 다른 스테이지로 갔고

이디오테잎이라는 밴드의 공연에 맞추어 미친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술이 살짝 오르기 시작한 나는 나보다 술이 더 오른 그녀를 잡으러 열심히 뛰어다녔다.

 

공연이 끝날 무렵 겨우 그녀를 잡았고 그녀는 엄청나게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더니

바베큐를 먹으러 가자고.


그녀의 숙소로 내려 갔더니 낮과는 전혀 다른 판이 열리고 있었다.

큰 철망에 남자 몇이 붙어서 매우 두꺼워 보이는 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는 관심 없다는 듯이 몇은 술만 마시고 있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남녀가 한구석에서 껴안고 있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했고, 담배 연기도 엄청났다.


아 싫다.

집에 갈까? 

집에 갈 차가 있을까?

택시는 비싸겠지? 그래도 여기 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마셔야죠! 오늘 진짜 너무 좋았잖아요! 보고 싶었던 밴드 다 보고!"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는 못 보지 않았냐고 지적하기엔 나도 좀 취해서.

그녀와 함께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적당히, 아니 좀 많이. 술을 마셨는데

취하지는 않았다. 이디오테입때 그녀를 잡으러 뛰어다녔더니 좀 깬 듯. 


한참 그녀와 이야기를 하더보니 어느새

고기를 굽던 사람들, 술만 마시던 사람들, 그리고 연애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방으로 모였다.

20명? 25명? 모르겠다. 


"이제 사람들 다 먹은 거 같으니까 게임을 시작하죠!"


게임? 오락? 뭐지? 나도 해야 하나? 

집에 갈까?


"와!!!! 재미있겠다. K씨도 같이 해요!"


뭔지 모르겠지만, 룰을 한 명이 설명을 하고 '게임'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중학교때까지 엄마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던 교회 주일학교 

끔찍해서 그 이후로는 5명 이상의 사람들 모임에는 나가본 적이 없기에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게임'이라는 것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왜 하는거지? 이 시간에? 자야하는 시간 아닌가?

시끄럽지 않나? 왜 아까보다 더 크게 떠들고 있지?

옆 방 사람들은? 아니 그 전에 이 안에도 하기 싫은 사람도 많지 않아?

무슨 목적으로 하는 거지?벌칙은 왜 주는거지?

그런데 나는 왜 처음 해보는 이 '게임'이라는 것을 잘하는 거지?


난 이미 깼고, 그들은 취해 있었다. 

온갖 이상한 벌칙들을 구경했고, 그나마 볼만 했던 것은 역시 노래 부르기 아니었을까.

낮부터 마시던 H는 연신 걸렸다.

걸릴 때마다 그는 

"아... 또 걸렸네 진짜 부르기 싫은데'하면서 뭔가 폼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하. 개새끼.

지가 부르고 싶으면 그냥 부르지.


"둥둥 두두둥 두둥 두두두둥" 

뭐 이런 베이스 소리를 입으로 냈는데 갑자기 인간들이 

"우어어억!"

뭐야 얘들은...


한참 뭘 부르더니

"렛유 버리잇 아원츄 스머더잇 아원츄 머러 . 아 탐이즈 러닝아웃 유 캔 푸쉿 언더그란 유 캔 스타빗 스크리마웃'

그러더니 뭔가 기타소리를 입으로 내고 에어기타를 마구 치고...

난 진짜 이 무슨 해괴한 장면인가 하는데 급기야 2절에서는 모두들 떼창을!!!!


"이 노래가 뭐에요?"

"모르세요? 뭐더라? 뮤즈! 뮤즈에요 뮤즈"


그를 보고 재수없다고 10번은 넘게 이야기 했던 그녀도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아. 미치겠는데


H는 또 걸리더니 


"ㅂ포 아 렛츄 게더웨이, 예! 어! 비마걸! 비마걸! 아유고나 비마걸!!!! 예~~~"


하면서 바닥을 몸으로 쓸고 다니는데

역시 이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떼창을 부르는데. 도대체 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녀는 이미 취해 있었다. 많이.

그년 게임을 열심히 하고. H가 부르는 노래를. 그리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열심히 같이 불렀다.


나는 씻고 자기로 했다.

바닥이 영 맘에 들지 않지만 집에 가는 것은 무리이고. 

시끄러워서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자는 척이라도 하는게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버스 타고 서울로 가야겠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