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길러야겠다, 또는 길러봐야겠다고 생각한건 꽤 오래된 일이다.
대학교때는 인근에 살던 동기에게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를 입양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에 나는 전혀 고양이에 대한 또는 동거하는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함께 지내는데 실패하였고,
어느날 고양이는 탈출을 하였었다.
고양이를 잘 기르는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난다는데 너는 아닌 것 같다고 친구들이 말을 해줬었다.
화장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강아지보다는 그래도 고양이가 낫다고 생각을 했었다.
예전에 길렀던 강아지는 정말 1년 6개월동안 한번도 우리가 바라는대로 변을 보지를 않았다.
물론 오랜 교육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강아지도 있지만
아무래도 강아지는 산책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와중에 고양이를 키우게된다면 러시안블루를 키워보겠다고 생각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사람과 다른 동물에게 친화적으로 알려진.
2012년 3월에 나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근 4년만에 식구들에게서 독립을 하였다.
외로웠고, 심심하였다.
당시의 집에서 고양이를 길러볼까 생각도 많이 했지만.
4평 남짓한 원룸은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기에.
고양이와 함께 해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4년 2월 나는 임상강사 과정을 마치고, 경기도 모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의대생 6년 - 인턴 1년 - 군의관 3년 - 레지던트 4년 - 임상강사 2년
도합 16년의 과정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16년동안 13번의 이사를 마치고
마침내 방 1개 생활을 탈피하기로 결정하여 도봉구의 아파트형 오피스텔로 옮기게 되었다.
방 1개 -> 집 1개가 되니 필요한 물건들, 정리할 것들을 하고
이제는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여 고양이와 함께할 생각을 시작하였다.
약 1달간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보는 기간을 거쳐
주위의 추천에 따라 1년 이상의 성묘에, 중성화가 된, 러시안 블루를 분양하겠다는 분을 찾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그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꼴통' ...
너무 하잖아... 이름이 이게 뭐야 ㅠㅠ
입양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알수 없는 강남역 근처의 건물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러시안 블루 2마리를 기르고 있었고, 안에는 나름의 캣타워도 있었다.
내가 입양하기로 한 고양이는 침입자(?)인 나에게도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바로 이동장에 넣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 차 안에서 처음에는 뭔가 불안한 소리를 냈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이런저런 글을 많이 읽었다.
새로운 환경에 가게되면 고양이에게 적응할 시간을 두고. 가만히 두라고.
나는 그대로 시행했지만. 이 고양이는 그런 고양이가 아니었다.
첫 1시간 책장에서 숨어있더니 1시간 지나서는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
내게도 다가와 다시 냄새도 맡고 하더니. 3시간째에는 첫 식사를... ㄷㄷㄷ
문제는 고양이는 이미 어느정도 적응을 했지만 나는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을 어디에 둘지, 밥은 언제 줄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해주고 놀아야 할지.
불안해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집사와 달리.
고양이는 편안해만 보였다...
내가 자고 있거나, 아니거나,
유유히 집안을 돌아다니며, 앉고, 자고...
꽤나 스트레스 받아야할 상황인 것 같았지만.
밥도 잘 먹었고, 화장실도 잘 사용하였고.
심지어 첫날부터 내게 다가와 비비면서 만져달라고 하였다...
마치 원래 자기의 집이었던 것처럼.
들었던 고양이의 습성과는 전혀 달랐다. 강아지인가? 아니 앉아있는거 보면 사람인데...
그렇게 되니, 이름을 뭘로 해줘야 할지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사실, 원래 이름이었던 '꼴통'이라고 불러도 거의 반응이 없었다... ㅠㅠ
이에. 15년 구너로써... 아스날에서 현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털색깔도 이러니까. '테오', '테오' 월콧
그냥 '월콧'으로 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별로 재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테오라고 하면. 테오 반 고흐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라고 생각도 했다. (실제로 그랬음)
빈센트 반 고흐의 유일한 지지자이자, 세상에의 유일한 창구였던 테오 반 고흐.
물론 내가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고...
문제는 위의 동영상과 사진들에서도 보여지듯이.
테오는 꽤 큰 고양이였고, 비만이었다.
아마도 중성화 이후에 마구 먹었을듯한 모습이었다.
움직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먹이는 주는대로 먹었다.
나는 여기저기를 찾아보았고, 천천히 체중감량을 시켜주기로 했다. (집사는 살을 못 빼는 주제에)
역시 운동에는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게 최고라고 들었다.
밥도 그냥 주지말고, 밥그릇을 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움직이게 하라고.
그래서 1주일정도 그렇게 해 보았는데.
아... 그래도 나는 사람인데... 이게 뭐야 ㅍㅍ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더 간편한 방법으로 바꾸었다.
위의 사진처럼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하니 아주 자유롭게 운동을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나를 의구심 가득찬 눈으로 쳐다보며.
결국은 레이저 포인터를 찾아내서 박살을 내버리긴 했지만 ㅠ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국 걱정이 되는건 내가 없을때의 생활이다.
저녁 시간에 내가 집에 들어올때는.
문을 열때 바로 앞에서 뭐라고 뭐라고 쫑알거린다.
나는 네가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네가 심심했다는 것은 알겠다.
심지어 어느 날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위에 사진처럼 두 발로 서서 내 몸에 달려들었다.
문을 열때 어떻게 앞에 나오는지 보기 위해 혹시나 해서
번호키를 사용하는 집의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다가 들어와봤다.
집 문 바로 앞에 있는 식탁에서 앉아 있었다.
하루 온 종일 그러고 있는것일까?
어떻게 해야 너를 거기에서만 앉아있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너는 나를 기다리지 않으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테오가 밖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해먹을 사다 주었다.
저 멀리 도봉산을 보라고. 저 멀리까지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처음부터 혼자서 올라가지는 않았다.
식사를 올려주고, 내가 일부러 들어서 얹어주고 해야 올라가더니.
어느날은 낮잠을 자면서 보니 저 해먹에서 나를 보고 있더라.
흥미로운 것은 음식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가끔 집에서 밥을 해먹고는 했는데.
어떤 음식을 하건 열렬한 반응을 보이며 자기 좀 달라고 장난이 아니었다.
몇번 혼내고는 했는데 별로 교육의 효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병을 핥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에는 또 과실주 병 입구를 핥고 있는... ㅠㅠ (오른쪽 참조)
향때문인가?
웃긴건 콜라는 정말 기겁을 하며 싫어하더라.
다른 고양이도 콜라 주면 도망가는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이게 다 이러는건지...
이렇게 몇 달을 지내고.
나는 영국으로 잠시 여행을 가야했다.
여행을 가면서 아는 동생에게 잠시 테오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과연 테오가 잘 지낼까 사고는 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그 집에서도 한시간만에 부비부비하며 친화력을 과시했다고.
웃긴건 그 집에 다시 내가 테오를 데리러 갔을때인데.
태연하게 누워있던 테오가 침입자 나를 보더니
'헐!!' 이라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던 거... ㅋㅋㅋㅋ
내가 다시 올 줄 모르고 이미 그 친구에게 적응하고 살았던 것이다.
아아... 나는 그냥 그런 존재구나 ㅠㅠ
이제 19개월이니 사람의 나이로 치면 20대 중반인 셈인다.
하루의 상당 부분을 저러고 지낸다.
뒹굴. 뒹굴. 뒹굴. 뒹굴.
낚시대네 뭐네 하며 놀아주려 해도 아주 잠깐 관심을 가지다가 무시당하기 일쑤 ㅠㅠ
그나마 최고로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시 뭔가를 내가 먹을때.
정말 고기들을 먹을때는 옆에서 아련하게 쳐다보는게
남자 고양이 주제에 청순 돋는다.. 허허 ㅠㅠ
저러고 있을때 혼내야지 뭘 달라고 안 달겨든다는데.
저런 표정 보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물론 그는 고양이, 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저런 박스, 상자 사랑이라든지.
사람과는 다른 수면 패턴.
그리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생길 수 밖에 없는 그의 짜증, 나의 짜증.
발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나와의 삶을 선택을 하지 않았고 동거인 아니 아니 동거묘로 내가 선택을 하였으니
그가 내게 보여주는 무한한 애정에 나는 답을 해줘야하는 것.
앞으로도 맛있는거 많이 사주고, 많이 놀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