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8년 크리스마스 이브, 국민학교 4학년 초등학생의 눈에는 대학가요제에 나온.

마지막에 그룹으로 나온 형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그 전의 다른 팀들에 비해 충격적일만큼 월등했다.

소방차 등등의 댄스그룹을 좋아했던 내게도 어필할만큼 음악은 댄서블했고.

다음날 만난 친구들, 방학이 지나 만난 친구들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2년후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을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는 신해철이었다.

1집을 내고, 아이돌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해철.

나는 그가 뭔가 느끼하다고 생각했다. 뭐 저런 사람의 노래를 좋아하냐고 생각했지만.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이라던지.

그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라던지.

이런 펀치라인에 결국은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 콜라피자발렌타인데이를 되뇌였지만.

중학생은 그냥 음악은 TV에서 듣는 수준이었다.


2.

중학생은 어느새 중3 입시생이 되었고.

자습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수업시간에는 좋아하는 밴드들의 이름을 낙서로 적었으며.

음악에 대한 텍스트를 읽었고, 대화를 할때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특목고 입시에 실패하고.

세상과 가족, 사회에 대한 모든 분노를 표할 곳이 없던 고1.

별 관심이 없었던 넥스트의 2집이 나왔다. 

하도 언론에서 난리이기에 사서 들었다. 내가 왜 넥스트 1집을 안 들었을까... 

한참 메탈에 빠지던 소년에게 어필하는 그 화려하고 웅장하고 메세지가 가득한 앨범.

정말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친구에게서 넥스트 1집 CD를 빌려서, 돌려주지 않았다.


3집이 나오고, 4집이 나오고.

재수생활을 하였지만, 여전히 넥스트는 최고의 자습음악이었다. 


3.

그가 언론에 제대로 쏟아내기 시작한 인터뷰들을 보고.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농담을 하며, 편집증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에 매달리는.

날카롭고, 싸가지 없고, 지멋대로지만, 예의가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발언을 하고, 움직이고.


그가 하는 말, 그가 들었던 음악을 모두 체킷했다.

그가 말하는, 쓰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들은 안 듣는 음악을 듣는 척 하기 위해 전영혁을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신해철의 방송이 취향에 맞았다.


4. 

대학생이 되었다.

음악취향은 이미 저 멀리로. 

영국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로 소년은 메탈을 촌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원래는 펑크락커였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신해철은 테크노를, 윤상과의 작업을, 영화 OST등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음악이 더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었던 넥스트의 1,2,3,4집의 노래가 과연 땅에 닿아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F가 터진 이후의 세상은 신해철이 노래를 불러왔던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았다. 


5.

그래도 신해철은 옆에 있었다.

단순히 좋은 음악만 소개하는 DJ가 아닌. 잘나가는 라디오 DJ로.

라디오 DJ인 그는. 당시에는 많이 쓰던 단어가 아니었던, 꽤 많은 덜 자란 사람들의 멘토였다.


그가 미숙한 사람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줬던 것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였다.


엄연한 공중파 라디오에서 그는. 음악만 틀기도, 방송을 하다가 나가기도, 심지어 자기도 하였고.

끊임없는 자기희화화와 끊임없는 자뻑으로. 

듣고 있는 너희들이 지금은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너희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어머니들에게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치 같이 사는 백수삼촌처럼 낄낄거리면서 이야기해줬다. 

낄낄낄


6.

고등학교 친구가 대학교 다닐때 합주실에서 신해철을 만났었다고 한다.

싸인을 받으러 갔더니.

"딴따라끼리는 이런거 주지도 받지도 않는거 아니냐?라고 하며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 라는 노래가 나오기 전에.

그가 열어준, 보여준 음악의 세계에서. 기타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빨간 기타 들고 밤새 잠을 못 자지는 않았고, 녹색 베이스 기타를 잡고 잠을 못 잤다.

기타를 잡고, 밴드를 만들고. 나도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었다. 그렇게 될 것 같았는데. 


7. 

신해철이 지지를 하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신해철이 지지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건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신해철과 노대통령의 인생은 어땠을까?


마침. 서태지도 컴백을 했던데. 


7.

대학가요제 스타, 독특한 아이돌, 대마 전과자.

멀티 인스투르먼탈리스트, 한국 최초의 랩, 영화음악감독.

돈 맘대로 쓰라고 하는 프로듀서, 메탈그룹 보컬, 메탈그룹 키보드.

디스코 마스터, 테크노 전도사, 라디오 DJ, 어설픈 연기자.

노빠, 파병반대시위, 토론프로그램 패널.

암환자의 남편, 활자중독자, 인디전도사.

내일은 늦으리, 듀스, 정석원, 서태지, 전람회, EOS, 윤상, 변진섭, 이승환, 신대철


그는 자신의 50년후의 모습은 보지 못하였다.

그가 20대에 불렀던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보여줬던 꼰대의 삶을 사는걸 보고 싶었는데.

추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년시절이 이제 끝났다고. 마지막 좋은 기억이 끝났다고 한다.

그의 레코드를 내밀며, 해철이형 고마웠다고 말하고 비웃음 받을 준비되어있는데..


이미 자신의 장례식에 들려질 노래까지 만들어 놓은 사람인지라. 

너무 슬퍼하면 저 아래에서 낄낄대면서 

'야 그건 아니지~ ' 하지 않을까 싶다.  


안녕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