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전 한 건장한 사내가 동남아시아 여인을 휠체어 앉혀서 외래로 들어왔다.

타 병원에서 두차례 혈액투석을 하였고, 앞으로 우리 병원에서 투석을 하겠다고.


그녀는 그 남자분의 처제였다. 

1년전까지 건강했던 그녀는 7개월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숨찬 증상과 빈혈이 발생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의 병원에서 검사를 했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태국의 방콕에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베트남까지 가서 병원에 방문하였으나 발견을 못하고, 그 동안 빈혈에 대한 주사만 맞았다고 한다.

증상은 안 좋아지고 있었고, 다시 캄보디아에 있는 병원에 갔을때는 투석이 필요하다고 듣고

한국인 봉사단이 소개해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왔다.


한국에 와서 소개해준 병원의 분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분원에서는 본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투석을 진행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만큼 안좋았기에, 응급실에서 투석을 받았다.

당연히 환자는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으니 그 3일간의 치료비용은 약 50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기타 자세한 검사를 시행하려 했으나 금액적 문제도 있고

캄보디아로 돌아갈 예정이라 자세한 검사는 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보호자에게서 듣고, 소견서로 확인을 하였다.

환자는 한국어 공부를 해서 말을 잘했었다고 하나 언젠가부터 한국어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하였다.  

두번의 투석을 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요독은 쌓여있는 상황으로 생각했다.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아 입원을 권유하였으나 

환자의 보호자는 거부하였고, 입원 없이 투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투석을 시작.

투석을 시작하는 경우 보통 30분 내에 문제가 생기기에 관찰하였으나 특이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50분 되던 때에 환자는 흔히 얘기하는 경기, 발작을 하였다.

요독이 쌓인 환자에게서 발작을 하는 것은 가끔 볼 수 있는 상황이기에, 일단 발작을 멈추는 약물을 사용.

이후 환자는 더 이상의 발작은 없었다.

하지만 발작의 원인을 요독으로만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CT를 촬영하였다.


그리고, 그 CT를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한장 한장을 돌려보면서 점점 더 마음은 무거워졌다. 


먼저 두부의 CT에는 이번에 출혈을 했을 부위가 관찰이 되었다. 

좌측 측두엽과 전두엽 후두엽 부위에 모두 출혈이 보였다.

그 곳 외에도 양측의 대뇌 여러부위에 과거의 출혈의 흔적들이 보였다.

과거 출혈의 흔적 부위는 종괴처럼 보이는 부위들과 함께 있었다.

병변들로 인해 대뇌의 부종은 매우 심한 상황.


뭐야... 이게... 이제 22살인데...


환자의 의식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급히 환자를 옮겨 관찰을 하며, 이미 사용하던 약물들을 다시 투여.

입원 당시에 시행하였던 검사 결과에서는 심각한 출혈성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발작 4시간 후에 환자의 반응은 더더욱 나빠졌다.

한측의 동공반사가 소실.

혹시나 해서 다시 CT를 촬영하였다.  

아까 출혈부위는 좌측. 이번에는 반대부위인 우측에서 대량 출혈.

양측의 출혈과 부종으로 보았을때 뇌간의 압박이 곧 진행될 것.


환자의 형부에게 사망의 가능성 높음을 설명하였다.

언니는 캄보디아에 있는 친척들에게 계속 울면서 전화를 하였다.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혹시 환자의 모습을 영상통화로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코마에 빠지게 되고 약 6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가호흡도 소실되었다.


다음 날에는 환자분의 어머니가 캄보디아에서 오셨다.

딸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하였다.

알수 없는 말을 하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팔을 만지고 하였다.


아버지는 안 오셨네요?라고 했더니 캄보디아 국왕의 생일기간으로 축제라 비자가 안된다고...


...


하루를 더 보낸후 보호자는 환자의 기도삽관을 제거해주길 요청했으나 이는 법적으로 불가함을 설명하고.

오래 가시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환자는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


환자의 원인 질환은 알 수 없었다.

CT에서 예전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다발성 출혈부분은 여러 질환들에서 가능한 것.

MRI를 찍을 수 있었다면 종양의 전이 이후 발생한 출혈인지 아님 그냥 출혈만 있던 것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입원시에 검사에서는 전신성 홍반성 낭창 또는 기타 자가면역 질환일시에 보일 수 있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만약 환자가 종양의 전신전이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것..

하지만 이것이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그렇다면 한국에 온 시기가 빨랐다면, 이렇게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환자가 의식이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불과 2~3시간밖에 안되고 바로 문제가 생겼지만

그동안 봐왔던 어떤 환자보다도 맘이 안 좋았다.

약 10년여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의사생활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 환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린 타국의 환자여서 그랬는지.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에서 그냥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망을 하는게 나았던 것일까?

아님 한국에 와서 원인질환이라도 이야기를 듣고 사망을 한게 나은 것일까?

아니 이런 상황에 뭐가 낫다고 생각하는게 의미가 있는가?

이 환자가 한국인이면 진단을 하고, 치료가 되었을까?

내게 스쳐간 환자들 중에 이런 환자는 없었을까? 

스쳐가서 나는 잊었지만 그 환자는 나를 증오하고 있는거 아닐까?


2015년 05월 15일 17시 54분에 환자는 사망했다.

영어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

보호자들에게 목례를 했다.


만약 다음 삶이 있다면

1년 가까이 아프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지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