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9. 16:43

그것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라고 불리던 것들은 차근차근 허물어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생각, 대화의 내용,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나는 무너지는 나를 보고 있었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막을 수 없었다.


본래의 나.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변하지 않는 것인지는 오랜 의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람은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는 자아에 대한 이미지 등으로

언제나 변화하는 존재이기도 때문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가장 편한 상태의 '내'가 있다면

그것을 '나'의 본래의 상태로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본인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

더군다나 어느 정도의 성장기를 거친 후에는

그 어린 시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 후이기에

본래의 나 중에 가장 찾기 쉬운 모습이 아닐까.


유년 시절의. 학령기의 나를 돌아보며

다른 이들의 평가들 중 부정적인 것을 나열해보면

어른스럽다. 어둡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냉정하다. 

타인에 관심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어른스럽다라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괜찮은 칭찬이자 기분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열 살이나 되었을 꼬마에게 자기들과 비슷하다고 한다니.

이는 무슨 저주인가. 

열 살에 어른스러운 아이는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반면에 내가 들었었던 칭찬은?

침착하다. 어른스럽다. 성실하다. 

끈질기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등등.


나에 대한 오랜 평가들 중 기억나는것은 저런 것들이었다. 

남들의 저런 유형의 평가는 20대 초반이 되기 전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나를 내가 견뎌하지 못했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재미가 없었고.

이렇게 살아서 사람들하고 말이나 할 까 싶을 정도로 겁이 많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저 사람이 내 얘기에 기분 나빠하지 않을지.

혹여나 싸우게 되지 않을지.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지 않을지.

 

내가 스스로를 또 지겨워 하고. 답답해 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변화하고 싶었다.


나는 늘. 내 스스로에게 이성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괜찮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나는 이성적이 아니고 자아비동조적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20대에 알게되었던 것.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것.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 좀 색달랐다고.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고.

실제로 여기저기서 어떤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올라가면서.

대화를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그런 일을 또 내가 하고 있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에 술이 필요할 정도로

나의 수치심이 그렇게 또 큰 것이었나?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익살'을 떨기 시작한 것은. 

내가 정이 많은 사람을 연기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정치적으로 옳은 사람인 것처럼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내가 한없이 나태한 나를 숨기고 성실히 보이기 위해 살기 시작한 것은.

내가 들었던 평가들과 다른 나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도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연기력은 꽤 괜찮았던 것 같다. 

나도 속았으니까 말이지. 

나는 내가 변한 줄 알았다. 


본래의 나는.

좀 더 자유롭고, 밝고, 겁이 없고, 친구가 많고, 자신감이 넘치는 

새로운 나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올 해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거짓된, 비어있는, 실제의 나와는 다른 나로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될 수록

나는 오히려 만들어 온 나의 모습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많은 시간을 SNS에 소비하며. 보여지는 나에게 새로운 옵션을 부가하며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으로 더욱 만들려고 했다.


펑! 

하고 그런데 터져버렸습니다.


터지니까

내가 쌓아온 모습들을 견뎌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도대체가. 내가 맛있는 것을 얼마나 분간을 할 수가 있다고. 

도대체가. 내가 구입하는 음악들을 정말로 그렇게 감명 깊게 듣는것인가.  

나는 그것들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님 그냥 옳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인가.

도대체가. 내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내가 재미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그리고 또 이런 것들이 나와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내가 보여주려고 한 이런저런 것들

나를 설명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알고들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 괴로움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그냥 누워서 생활했습니다.

퇴근하면 바로 누워서 열시간씩 자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이야기를 최대한 피하고.

퇴근글에 식사를 하고 집에서 바로 술을 두세병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는 술을 컴퓨터를 했는데.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렇게 한 달 정도 누워서 있다 보니 

이렇게 더 있다가는 정말 자살하겠다 싶어서.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내 나이 곧 마흔을 바라보는데.

본래의 나와 가장 가까운 모습들은 무엇인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중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버려야 할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계속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고.


편한 나의 모습을 유지하며 되고 싶은 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이고.

솔직히 또 뻥! 하고 터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런건 또 그 때 생각해야지. 


솔직한 어른이 되겠습니다. 

아직은 어른스러운 아이밖에 안 되는 것으로.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