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쌍다반사'에 해당되는 글 168건

  1. 2014.10.28 신해철
  2. 2014.10.03 20140925~20140926 전주, 서천여행 4
  3. 2014.09.26 Theo. the cat 1
  4. 2014.07.30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3>
  5. 2014.07.11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2> 6


1. 

88년 크리스마스 이브, 국민학교 4학년 초등학생의 눈에는 대학가요제에 나온.

마지막에 그룹으로 나온 형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그 전의 다른 팀들에 비해 충격적일만큼 월등했다.

소방차 등등의 댄스그룹을 좋아했던 내게도 어필할만큼 음악은 댄서블했고.

다음날 만난 친구들, 방학이 지나 만난 친구들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2년후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을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는 신해철이었다.

1집을 내고, 아이돌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해철.

나는 그가 뭔가 느끼하다고 생각했다. 뭐 저런 사람의 노래를 좋아하냐고 생각했지만.

선물가게의 포장지처럼. 이라던지.

그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라던지.

이런 펀치라인에 결국은 끌릴 수 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 콜라피자발렌타인데이를 되뇌였지만.

중학생은 그냥 음악은 TV에서 듣는 수준이었다.


2.

중학생은 어느새 중3 입시생이 되었고.

자습시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수업시간에는 좋아하는 밴드들의 이름을 낙서로 적었으며.

음악에 대한 텍스트를 읽었고, 대화를 할때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특목고 입시에 실패하고.

세상과 가족, 사회에 대한 모든 분노를 표할 곳이 없던 고1.

별 관심이 없었던 넥스트의 2집이 나왔다. 

하도 언론에서 난리이기에 사서 들었다. 내가 왜 넥스트 1집을 안 들었을까... 

한참 메탈에 빠지던 소년에게 어필하는 그 화려하고 웅장하고 메세지가 가득한 앨범.

정말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친구에게서 넥스트 1집 CD를 빌려서, 돌려주지 않았다.


3집이 나오고, 4집이 나오고.

재수생활을 하였지만, 여전히 넥스트는 최고의 자습음악이었다. 


3.

그가 언론에 제대로 쏟아내기 시작한 인터뷰들을 보고.

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농담을 하며, 편집증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에 매달리는.

날카롭고, 싸가지 없고, 지멋대로지만, 예의가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발언을 하고, 움직이고.


그가 하는 말, 그가 들었던 음악을 모두 체킷했다.

그가 말하는, 쓰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들은 안 듣는 음악을 듣는 척 하기 위해 전영혁을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저 신해철의 방송이 취향에 맞았다.


4. 

대학생이 되었다.

음악취향은 이미 저 멀리로. 

영국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로 소년은 메탈을 촌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원래는 펑크락커였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신해철은 테크노를, 윤상과의 작업을, 영화 OST등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음악이 더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었던 넥스트의 1,2,3,4집의 노래가 과연 땅에 닿아있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F가 터진 이후의 세상은 신해철이 노래를 불러왔던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았다. 


5.

그래도 신해철은 옆에 있었다.

단순히 좋은 음악만 소개하는 DJ가 아닌. 잘나가는 라디오 DJ로.

라디오 DJ인 그는. 당시에는 많이 쓰던 단어가 아니었던, 꽤 많은 덜 자란 사람들의 멘토였다.


그가 미숙한 사람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줬던 것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였다.


엄연한 공중파 라디오에서 그는. 음악만 틀기도, 방송을 하다가 나가기도, 심지어 자기도 하였고.

끊임없는 자기희화화와 끊임없는 자뻑으로. 

듣고 있는 너희들이 지금은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너희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어머니들에게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치 같이 사는 백수삼촌처럼 낄낄거리면서 이야기해줬다. 

낄낄낄


6.

고등학교 친구가 대학교 다닐때 합주실에서 신해철을 만났었다고 한다.

싸인을 받으러 갔더니.

"딴따라끼리는 이런거 주지도 받지도 않는거 아니냐?라고 하며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 라는 노래가 나오기 전에.

그가 열어준, 보여준 음악의 세계에서. 기타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빨간 기타 들고 밤새 잠을 못 자지는 않았고, 녹색 베이스 기타를 잡고 잠을 못 잤다.

기타를 잡고, 밴드를 만들고. 나도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었다. 그렇게 될 것 같았는데. 


7. 

신해철이 지지를 하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신해철이 지지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건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신해철과 노대통령의 인생은 어땠을까?


마침. 서태지도 컴백을 했던데. 


7.

대학가요제 스타, 독특한 아이돌, 대마 전과자.

멀티 인스투르먼탈리스트, 한국 최초의 랩, 영화음악감독.

돈 맘대로 쓰라고 하는 프로듀서, 메탈그룹 보컬, 메탈그룹 키보드.

디스코 마스터, 테크노 전도사, 라디오 DJ, 어설픈 연기자.

노빠, 파병반대시위, 토론프로그램 패널.

암환자의 남편, 활자중독자, 인디전도사.

내일은 늦으리, 듀스, 정석원, 서태지, 전람회, EOS, 윤상, 변진섭, 이승환, 신대철


그는 자신의 50년후의 모습은 보지 못하였다.

그가 20대에 불렀던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보여줬던 꼰대의 삶을 사는걸 보고 싶었는데.

추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년시절이 이제 끝났다고. 마지막 좋은 기억이 끝났다고 한다.

그의 레코드를 내밀며, 해철이형 고마웠다고 말하고 비웃음 받을 준비되어있는데..


이미 자신의 장례식에 들려질 노래까지 만들어 놓은 사람인지라. 

너무 슬퍼하면 저 아래에서 낄낄대면서 

'야 그건 아니지~ ' 하지 않을까 싶다.  


안녕

Posted by 빨간까마구

서울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매일 경기도로 출퇴근 하는 인간이 뭔 소리인가 싶은데.

오전 6시 기상, 준비, 출근, 근무, 오후 6시 퇴근, 집 도착, 식사, 취침.

여기가 경기도인지 서울인지 제주도인지 알 수 없는 그냥 진료실. 

주말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

집에서 뒹굴뒹굴, 홍대 가서 밥 좀 먹고 만화 좀 보다가 술 마시기.

여기는 홍대일수도, 도봉일수도, 종로일수도 있는 것.


잠시동안 이런 일상을 좀 깰 수 있었다. 일상 + 알파가 생겼었다. 

단순히 일상을 벗어남이 아니라, 여러 의미로 행복했다. 즐거웠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나 자신만을 생각치 않고 다른 사람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지만, 즐거웠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끝을 보았을때.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을 하러 출근을 하는 것도, 일이 끝나 퇴근을 하는 것도 괴로웠다. 

원망을 할, 욕을 할 타인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시간동안 관계의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겉돌고 끝났다.   


서울에, 내 집에, 또는 친구들과 매주 보는 익숙한 장소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익숙한 장소에 있으면, 폭주를 하고, 잠시 즐겁게 떠들고, 술이 깨면, 매우 우울해 할 것이었다.


전주, 속초, 부산, 제주도를 놓고 고민을 했다. 

제주도를 가서 개새끼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으로 살기 위해 참았다.

속초를 가면, 그 사고가 났던 군의관 생활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냥 순수 먹부림을 하기 위해, 전주를 택했다. 

다행히 전주, 서천에는 대학동기들이 살았다. 


순수하게 먹으러 갔다. 

그리고 많이 먹었다. 세끼 + + + + 



날은 꽤 맑았다. 바로 그 전 날에는 비가 왔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바로 출발하려 했으나, 집 꼴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양이하고 함께 사는 집이고, 이틀동안 혼자 있어야 할 고양이 생각에 좀 치웠다.

치우다 보니 1시간이 걸리.. ㅠㅠ 그래도 오전 8시에 출발했다.

전주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는데.

도봉 출발 -> 동부간선 -> 경부고속 -> 천안 논산 -> 전주 

중간 중간 막히기도 하고, 뻥 뚫리기도 하고.

뻥 뚫린 곳에는 주위 차들만큼 밟아봤는데 대략 180~190 ?

160 밟으면 부들부들대던 전 차와는 달리 이 차는 큰 문제는 없었다.



전주에 도착하면 순대국밥부터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출발했다.

지난번에 전주에 갔을 때 결국은 먹지 못했던 ㅠㅠ

남부시장의 조점례 순대국밥을 먹었다. 

사람은 진짜 많더라... 허허

순대국밥 + 피순대 시켜서 먹었는데. 양이 꽤 많아서 남기고.

피순대임에도 의외로 맛이 꽤 깔끔했다. 깔끔한 맛을 위해 뭘 얼마나 넣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남부시장에 주차를 했으면 이제 그냥 돌아다니면 된다.

남부시장에서 걸어 나오면 바로 보이는 풍남문.

풍남문을 지나면 풍남광장이 보인다.


이 곳에서 좀 웃긴 행사를 했는데 조선무과 전주대회라는 것을 했다.

아마 내가 도착한 시간은 리허설 시간.

연습을 하고 무대에 잠시 오르고 했었다. 

그러면서 체험음식이라고 막 주먹밥 줄 서서 먹고 그러던데. 좀 웃겼음.



사실 내 시선을 더 끈 것은 위의 광경들이었다.

조선 무과 대회 옆의 세월호 플랭카드와 초고속 인터넷 접수 플랭카드.

조선 무과 대회 행사하는 바로 옆에서는 세월호 관련 시위 천막이 있었다.




그리고 길 건너에 전동성당 건물을 보고.

남부시장에 주차해 놓은 차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전주 내려와서도 사실 뭘 해야겠다는건 저녁에 동기 만나기로 한 것밖에 없었는데.

전동성당 - 한옥마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결정!


전동성당은 꽤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 성당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검색해서 암)의 1914년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하니 100년이 넘은 성당이었다.

안에 들어가보려 했는데 마침 토요일이니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멋진 성당을 배경으로 하객들도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뒷뜰로 가보니 무슨 조각이 있기에 오. 저건 뭐야 하고 가보니.

바티칸에서 보았던 거대한 피에타상이 ㄷㄷㄷㄷ

냉담자 생활을 하는 주제에 간만에 미사나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정덕분에...



전동성당 바로 건너편에는 경기전이 있다.

사실 가기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고, 한옥마을 들어가는 길에 발견함...

태조 이성계의 어전(초상화)를 모시는 곳이 바로 이 곳 경기전이었다.

뭐... 기억해보면 전주 이씨 아닌가...


마침 내가 간 주에는 조경묘라고 전주이씨의 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곳을 여는 날이었다.

잠깐 보고, 궁중음악 연주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후는 한옥마을 투어.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왠지 '태국'의 도시인 '빠이'가 생각이 났는데.

뭐 별다른 이유는 없고 곧게 난 길에 차 없이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뭘 계속 먹고 있는 걸 보니까..


나도 이 뭔가를 먹고 돌아다니는 무리들에 동참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구경을 하며 다녔다.

아니 저걸 왜 여기와서 먹지 싶은 것들(꽈배기, 감자튀김)도 있었지만.

역시 이런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건 괴식 아닌가.


내가 첫번째로 맛본건 전주비빔밥 고로케.

고로케를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고로케 가게를 보고 들어갔는데... 이런 괴식이...

뭔가 신선한 나물을 먹는 맛에 먹는 비빔밥을 고로케 안에 넣으니.

역시 맛이 없었다... 그냥 김치 고로케나 먹을걸...


다음은 지팡이 아이스크림. 

이거 여기저기 많다는데 난 처음봤다 ㅠㅠ 

전주임실 치즈 + 초코렛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왜 저런 지팡이 과자에 넣어야 하나 싶었지만...

다 먹었음. 덕분에 혓바닥 벗겨지고.... ㅠㅠ




먹부림을 하다보니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는 내 대학 동기인 성호.

그리고 성호와 같이 제일 친했던 친구인 기방이가 대전에서 내려와서.

셋이서 같이 1년을 살았고, 각각은 1~2년씩 살았으며, 같이 살지 않을때도 늘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간만에 모임.

사실 대학때는 우리를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관우장비라고도 불렀다...

유비관우장비인 이유는 그 당시까지 우리만 솔로였기에... 


간만에 셋이서만 모여서. 온갖 B급 단어를 내뱉으며 저속한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앞에 놓인 한정식을 폭풍 흡입하면서. 

정말 대학교때의 그 humble하게 살았던, 살 수 밖에 없었던 가정환경의 우리였는데.

상이 꽉 차게 나오는 음식들을 먹을 정도로는 좋아졌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역시 기방이가 결혼을 했고, 와이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1/2병 마시는 성호는 운전을 해야하고, 1병정도 마시는 기방이는 대전으로 컴백 예정.

물론 나 혼자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안타까워서.

2차를 가서는 기방이를 취하게 만들어 대전을 못가게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정도로 제 정신이 아닌 나는 아니기에 기방이는 별 문제 없이 갔다.

물론... 집에 가서 좋은 소리는 못 들었겠지.


좀 웃겼던 것은 성호가 고양이를 한마리 키운다는거...

역시 혼자 사는 남자도 어쩔 수 없이 고양이의 노예가 되는건가... ㅠㅠ



다음날 아침 성호는 출근이었다.

식사를 같이 할 시간은 없었고, 이에 나는 바로 성호네 집에서 나왔다.

그래도 어제 술 좀 마셨으니 아침은 해장. 역시 전주의 해장국은 콩나물 해장국

이곳저곳 검색해보다가. 그냥 왱이집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역시 전주인지라. 김과 계란이 나왔다.

옆자리에 앉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먹는거지?' 하더니 계란을 바로 해장국에 투척하려하기에.

그게 아니고 김을 여기 뿌리고 국물을 넣고 그냥 드세요라고 말해주려 했으나.

뭐 그렇게 먹는것보다 저렇게 먹는게 더 맛있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였다.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고 보니 어렸을적에 고기를 싸먹는거나, 김밥을 먹거나 하는게 뭐하는 짓인가라 생각하고 행동했었다.

고기를 상추에 싸먹지 않고. 그냥 고기 따로, 상추 따로...

김밥 엄마가 만들때. 김밥 안 먹고 그냥 햄따로 밥 따로 김따로...

지금 생각하면 꼬맹이 주제에 참 재수없었던 것 같기도.


그리고 이동하여 유명한 백일홍에서 만두와 찐빵을  먹으러 이동했으나 fail.

일요일은 문 안 여는 것 같더라 ㅠㅠ

어쩔 수 없이 이동한 곳은 '동포만두'

집에서 냉동만두나 먹던 요즘인데 꽤 괜찮은 만두를 오랜만에 먹었다.

김치 반 + 고기 반 해달라고 했더니 손님이 아직 없어서 그런지 해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이 곳. 예수병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나를 본 사람들은 절반은 나를 전라도 사람으로 본다.

태어나서 100일까지만 전주 살았고, 나는 전라도에서 살아본 적은 한번도 없는데...


다만 부모님이 사신 곳은 전라도. 나의 본적도 전라도 정읍.

물론 아버지는 고등학교때부터 서울생활, 어머니도 서른전에 올라오셨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곳은 전주의 예수병원. 

태어나서 100일까지 살았던 곳도 전주.


어머니도 돌아가신지도 이제 20년이 넘었고, 외가댁 식구도 전부 수도권에 살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변화 없다.


내가 태어난 예수 병원을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언덕 위에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듯한 병원에 79년의 그런 흔적은 전혀 없는 듯 싶었지만. 



전주에서 나오면서 다음 경유지를 결정해야 했다.

물론 서울 오기전의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지만.


군산으로 갈 것인가. 익산으로 갈 것인가로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군산은 언제 또 갈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익산으로...


물론 익산에서 한 일은 별로 없었다.

'황등비빔밥' 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육회 비빔밥을 먹으러 익산시 황등면에 찾아갔다.

육회 비빔밥이 꽤 저렴한 과격에 꽉꽉 나와서 만족도가 매우 높았고, 

국물은 맑은 선지국... 캬...

순대를 만들어 놓은걸 상 위에 놓은 걸 보고 좀 사려다가... 포기. ㅠㅠ


그렇게 서천으로 가려다가 '익산 온천랜드'라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정말 즉흥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차를 몰아 갔다.

온천물이 나오는 곳이었지만... 시설은 그냥 동네 목욕탕같은..

수영복을 입고 할 수 있는 야외탕이 있다지만 거기 나갈 온도는 안되었다. ㅎㅎ



그렇게 마지막 목적지인 서천으로...

서천에는 몇 년에 한 번씩은 가는데. 그 곳에는 대학동기인 종영이형이 있기때문.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좀 실수를 한 것이.

간다고 말만 하고 몇시쯤 도착하는지 말을 안 했.... ㅠㅠ


서천에는 이 맘때쯤에는 꽃게 전어 축제라는 것을 한다.

이번에 한 번 처음으로 가볼까 하는 마음에 일정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 나는 이 전어, 꽃게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고. 사실 먹으러 가는건 대하.

전어는 뭐...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축제를 하는 홍원항에 갔더니.

이미 일요일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썰렁했다.

축제의 메인 스테이지에는 타지에서 오신듯한 등산복 입은 아주머니들이 밴드에 맞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술이 많이 취해서인지 박자, 음정 모두 별로였다.

그 앞에서는 삐에로 분장을 한 아주머니가 도와주시고 있었다.

옆에서는 전어를 파는 작은 가게들..

바람도 좀 차게 불고 있으니, 적당히 쓸쓸한 광경으로는 딱이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이것들을 먹었다.

전어구이, 전어무침, 대하구이.

전어회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전어회는 맛이 없더라...


이렇게 먹으며, 시간을 보니 저녁 8시.

이때쯤 출발하면 서해안 고속도로 막히지 않겠지 생각하고 출발을 했다.

안 막히더라. 

주위 차들만큼 속도를 내니 1시간동안 130km 주파... 물론 규정속도 위반. ㅠㅠ

하지만 이후 길이 막혀서 결국 120km를 2시간동안 운전...


집에 돌아와 보니. 고양이는 나를 반기며.

혹시나 하고 보니 3일치를 놓은 식량을 이미 다 먹은 후였다.


고양이도 과식, 나도 과식. 


2일동안 600km정도 운전을 하며,

아이폰의 음악 2000곡을 랜덤 재생을 하고 돌아다녔다.

서울을 떠나, 잠시 친구들과 있었지만 주로 혼자, 맛있는 것들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그닥 맘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다만, 2주후, 토요일에 출근 안해도 되는 주말에 또 다시 어디로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고양이를 길러야겠다, 또는 길러봐야겠다고 생각한건 꽤 오래된 일이다.

대학교때는 인근에 살던 동기에게 2개월짜리 아기 고양이를 입양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에 나는 전혀 고양이에 대한 또는 동거하는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함께 지내는데 실패하였고, 

어느날 고양이는 탈출을 하였었다. 

고양이를 잘 기르는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난다는데 너는 아닌 것 같다고 친구들이 말을 해줬었다.


화장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강아지보다는 그래도 고양이가 낫다고 생각을 했었다.

예전에 길렀던 강아지는 정말 1년 6개월동안 한번도 우리가 바라는대로 변을 보지를 않았다.

물론 오랜 교육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강아지도 있지만

아무래도 강아지는 산책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와중에 고양이를 키우게된다면 러시안블루를 키워보겠다고 생각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사람과 다른 동물에게 친화적으로 알려진.


2012년 3월에 나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근 4년만에 식구들에게서 독립을 하였다.

외로웠고, 심심하였다. 

당시의 집에서 고양이를 길러볼까 생각도 많이 했지만.

4평 남짓한 원룸은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기에.

고양이와 함께 해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2014년 2월 나는 임상강사 과정을 마치고, 경기도 모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의대생 6년 - 인턴 1년 - 군의관 3년 - 레지던트 4년 - 임상강사 2년

도합 16년의 과정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16년동안 13번의 이사를 마치고

마침내 방 1개 생활을 탈피하기로 결정하여 도봉구의 아파트형 오피스텔로 옮기게 되었다.

방 1개 -> 집 1개가 되니 필요한 물건들, 정리할 것들을 하고

이제는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여 고양이와 함께할 생각을 시작하였다.


약 1달간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살펴보는 기간을 거쳐

주위의 추천에 따라 1년 이상의 성묘에, 중성화가 된, 러시안 블루를 분양하겠다는 분을 찾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그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꼴통' ... 

너무 하잖아... 이름이 이게 뭐야 ㅠㅠ

 

입양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알수 없는 강남역 근처의 건물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러시안 블루 2마리를 기르고 있었고, 안에는 나름의 캣타워도 있었다.

내가 입양하기로 한 고양이는 침입자(?)인 나에게도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바로 이동장에 넣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 차 안에서 처음에는 뭔가 불안한 소리를 냈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 이런저런 글을 많이 읽었다.

새로운 환경에 가게되면 고양이에게 적응할 시간을 두고. 가만히 두라고.

나는 그대로 시행했지만. 이 고양이는 그런 고양이가 아니었다.

첫 1시간 책장에서 숨어있더니 1시간 지나서는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

내게도 다가와 다시 냄새도 맡고 하더니. 3시간째에는 첫 식사를... ㄷㄷㄷ


문제는 고양이는 이미 어느정도 적응을 했지만 나는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을 어디에 둘지, 밥은 언제 줄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해주고 놀아야 할지.



불안해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집사와 달리.

고양이는 편안해만 보였다...
내가 자고 있거나, 아니거나, 
유유히 집안을 돌아다니며, 앉고, 자고...
꽤나 스트레스 받아야할 상황인 것 같았지만.
밥도 잘 먹었고, 화장실도 잘 사용하였고.
심지어 첫날부터 내게 다가와 비비면서 만져달라고 하였다...
마치 원래 자기의 집이었던 것처럼. 

들었던 고양이의 습성과는 전혀 달랐다. 강아지인가? 아니 앉아있는거 보면 사람인데...



그렇게 되니, 이름을 뭘로 해줘야 할지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사실, 원래 이름이었던 '꼴통'이라고 불러도 거의 반응이 없었다... ㅠㅠ

이에. 15년 구너로써... 아스날에서 현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털색깔도 이러니까. '테오', '테오' 월콧 

그냥 '월콧'으로 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별로 재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테오라고 하면. 테오 반 고흐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라고 생각도 했다. (실제로 그랬음)

빈센트 반 고흐의 유일한 지지자이자, 세상에의 유일한 창구였던 테오 반 고흐.

물론 내가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고...



문제는 위의 동영상과 사진들에서도 보여지듯이.

테오는 꽤 큰 고양이였고, 비만이었다.

아마도 중성화 이후에 마구 먹었을듯한 모습이었다.

움직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먹이는 주는대로 먹었다.

나는 여기저기를 찾아보았고, 천천히 체중감량을 시켜주기로 했다. (집사는 살을 못 빼는 주제에)



역시 운동에는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게 최고라고 들었다.

밥도 그냥 주지말고, 밥그릇을 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움직이게 하라고.

그래서 1주일정도 그렇게 해 보았는데.

아... 그래도 나는 사람인데... 이게 뭐야 ㅍㅍ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더 간편한 방법으로 바꾸었다.

위의 사진처럼 레이저 포인터를 이용하니 아주 자유롭게 운동을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나를 의구심 가득찬 눈으로 쳐다보며.

결국은 레이저 포인터를 찾아내서 박살을 내버리긴 했지만 ㅠ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결국 걱정이 되는건 내가 없을때의 생활이다.

저녁 시간에 내가 집에 들어올때는.

문을 열때 바로 앞에서 뭐라고 뭐라고 쫑알거린다. 

나는 네가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네가 심심했다는 것은 알겠다.

심지어 어느 날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위에 사진처럼 두 발로 서서 내 몸에 달려들었다. 

문을 열때 어떻게 앞에 나오는지 보기 위해 혹시나 해서 

번호키를 사용하는 집의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다가 들어와봤다.

집 문 바로 앞에 있는 식탁에서 앉아 있었다. 

하루 온 종일 그러고 있는것일까? 

어떻게 해야 너를 거기에서만 앉아있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너는 나를 기다리지 않으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테오가 밖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해먹을 사다 주었다.

저 멀리 도봉산을 보라고. 저 멀리까지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처음부터 혼자서 올라가지는 않았다.

식사를 올려주고, 내가 일부러 들어서 얹어주고 해야 올라가더니.

어느날은 낮잠을 자면서 보니 저 해먹에서 나를 보고 있더라. 




흥미로운 것은 음식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가끔 집에서 밥을 해먹고는 했는데.

어떤 음식을 하건 열렬한 반응을 보이며 자기 좀 달라고 장난이 아니었다.

몇번 혼내고는 했는데 별로 교육의 효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병을 핥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에는 또 과실주 병 입구를 핥고 있는... ㅠㅠ (오른쪽 참조)

향때문인가? 

웃긴건 콜라는 정말 기겁을 하며 싫어하더라.

다른 고양이도 콜라 주면 도망가는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이게 다 이러는건지...


이렇게 몇 달을 지내고.

나는 영국으로 잠시 여행을 가야했다.

여행을 가면서 아는 동생에게 잠시 테오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과연 테오가 잘 지낼까 사고는 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그 집에서도 한시간만에 부비부비하며 친화력을 과시했다고.



웃긴건 그 집에 다시 내가 테오를 데리러 갔을때인데.

태연하게 누워있던 테오가 침입자 나를 보더니

'헐!!' 이라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던 거... ㅋㅋㅋㅋ

내가 다시 올 줄 모르고 이미 그 친구에게 적응하고 살았던 것이다. 


아아... 나는 그냥 그런 존재구나 ㅠㅠ



이제 19개월이니 사람의 나이로 치면 20대 중반인 셈인다.

하루의 상당 부분을 저러고 지낸다.

뒹굴. 뒹굴. 뒹굴. 뒹굴.

낚시대네 뭐네 하며 놀아주려 해도 아주 잠깐 관심을 가지다가 무시당하기 일쑤 ㅠㅠ



 그나마 최고로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시 뭔가를 내가 먹을때.

정말 고기들을 먹을때는 옆에서 아련하게 쳐다보는게

남자 고양이 주제에 청순 돋는다.. 허허 ㅠㅠ

저러고 있을때 혼내야지 뭘 달라고 안 달겨든다는데.

저런 표정 보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물론 그는 고양이, 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저런 박스, 상자 사랑이라든지.

사람과는 다른 수면 패턴.

그리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에 생길 수 밖에 없는 그의 짜증, 나의 짜증.

발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는 나와의 삶을 선택을 하지 않았고 동거인 아니 아니 동거묘로 내가 선택을 하였으니

그가 내게 보여주는 무한한 애정에 나는 답을 해줘야하는 것.

앞으로도 맛있는거 많이 사주고, 많이 놀아줄게.





Posted by 빨간까마구


이전 내용들...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1>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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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8일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이유를 찾은 세번째 날.

이렇게 이유를 적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6월 1일 그러니까 6월 8일로부터 1주일 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K씨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되세요?"

허허... 설마... 그날 나 트래비스 보러가야 하는데

"예? 토요일이요? 왜요?"

"친구 중에 A라고 얘기했었죠? 그 친구가 7월에 결혼한다고 친구들하고 걔네들 남자친구들하고 다 같이 보자고 해서요."

뭐라고? 나 트래비스 보러가야 하는데

"아. 제가 그날 뭐 있었던 것 같은데 스케쥴 확인 좀 할게요."

"예 그럼 연락 주세요."


뭐라고? 결혼하는 여자친구들 모이는데 나보고 가자고 하는건가?


음. 일단 그녀가 나를 친구들 모이는데 '남자친구'로 가자고 하는건 나쁘지 않다.

그녀와 헤어질 이유를 적립하고 있지만 아직은 2가지. 

10개 적립을 못한다면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면이 한가지라면 나쁜 면은 백은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친구들의 남친까지 나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몇명인가. 

나는 그 무리의 사람들 중 오직 그녀만 알고 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하하 호호' 

'그러니까요 말씀 듣는 것처럼 미인이시네요 하하호호'

말씀 많이 들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녀의 친구들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군다나 내가 여지껏 읽었던 '여자와 사귈때 주의해야할 일'에 대한 매뉴얼에는.

여자친구의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이야기도 적혀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날은 트래비스가 공연을 하는 날이다.

트래비스의 한국 공연에서 벌어지는 노래 중간에 종이비행기 날리기 이벤트를 위해 이미 집에 10개는 접어놓았는데.

안되겠다. 핑계를 대야겠다. 


"여보세요!"

"아 예. 스케쥴 확인 하셨어요?"

"예 그날은 저희 가족이 밥을 먹기로 해서요. 할아버지 생신이라."

"예? 할아버지 생신이요?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오 마이.... 그걸 기억한다고? 어떻게? 왜? 

아니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아니... 일단 이걸 넘기자.


"아 저희는 돌아가신 조부모들의 생신도 가족들끼리 모여서 기념하거든요."

"역시 화목한 가족이구나. 그때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야기하셨을때 왜 그때 울면서 보고싶다고 하셨잖아요"

"아 맞아요. 제가 그랬죠"

"그럼 안되시는거네요? 못 오겠구나.."

"아뇨. 제가 가족들에게 얘기를 해볼게요."


하하... 이렇게 된 이상 갈 수 밖에 없게 되었구나.

거짓말을 한게 잘못이다. 그녀는 예리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는 그녀에게 죽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운것이 잘못. 

사실 할아버지를 보고 싶을리가 없지. 

유치원생이었던 내가 TV채널 보고 싶은거 틀었다고 쌍욕한 사람이다.

알콜중독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 초등학생이던 내게 술 사오라고 때리던 사람이다. 


이렇게 트래비스는 못 보는건가? 종이 비행기는 어떻게 하나? 집에서 날려야 하나? 

인터넷 팬클럽에 종이 비행기 접은거 가져가서 날려주시면 안되나요라고 글 쓰면 미친 놈 취급 당하겠지?


포기하자. 그냥 그녀의 친구들의 자리에 나가보자.

그녀의 친구와 그 남친들이 나를 죽이러 오는 것도 아닐텐데.

설마 그 사람들이 서로 아는 사이겠어? 다같이 모르는 자리 식사하고 끝나겠지.


그리고 6월 8일. 종로. 장소, 시간 모두 에러. 

그녀의 친구들 또래의 모임에 종로라니 이건 뭐 딱 아줌마 아저씨 모임. 막걸리. 피맛골. 

물론 그녀는 누가 봐도 아줌마가 아니다. 나와는 한살 차이지만 누가 봐도 그녀는 20대이다.

그녀의 친구,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문제인 것이다.  

소중한 토요일을 개인 시간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부터가 맘에 안든다.


그녀는 미안해 하며, 내 친구들은 언제 안 모이냐고 했지만.

내가 한때 친구라고 했던 사람들은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만나지 않은지 3년은 되었다.

그나마 중학교때 만나서 고등학교때까지 만난 사람들이 그나마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친구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후에 가까웠던 사람들과 결국은 친구가 되지 못했던건 내가 타인을 필요치 않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 이상한 사고의 회로를 보여줄 수는 없다.

'저 새끼 또라이네'라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이 아닌 똘아이 아닌 또라이. 


약속시간 7시에 그녀와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사실 그 전에 만날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정시에 바로 앞에서 만났다.

"K씨랑 종로에 오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 매번 가로수길에서만 만나서. 좋네요 여기도"


오직 가로수길에서 만나는 이유.

내가 읽는 블로그에는 가로수길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만나는 것을 비웃고 있었다.

홍대는 애들 노는곳, 상수는 밴드하냐? , 신촌은 거기 학교 나왔어?

건대는 원래 이름이 화양리인건 알지? 압구정은 언제적 압구정이야, 코엑스는 초딩 만나냐?

이렇게 다른 지역을 까고 시작하고 가로수길의 핫플레이스들을 하나둘 소개해 주는 블로그.  

나중에 알고 보니 블로그 주인이 가로수길 카페베네 사장이긴 했는데.

이미 좀 늦었던 것 같다. 다른 지역은 못 가겠어. 못가겠어...


종로라고 이야기를 들었을때부터 예상을 했듯이 만나는 장소는 막걸리집이었다.

그네들의 과감성에 경의를 표한다. 처음 만나는 이들을 위해 막걸리집.

아무리 자기네 결혼하는데 비용을 아껴야겠지만 그런때는 좀 더 써야하지 않나?


"K씨 무슨 생각하세요?"

"아! 아니에요~ 막걸리 좋네요. 여기 유명한 집인가 봐요?"

"저희 친구들이 자주 만나는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저희 친구들하고 남친들하고 자주 만났었다고 말씀 드렸었죠?"


???

자주 만났었다고? 에이 설마 


"아 그래요? 몰랐네. 다들 친하신가봐요?"

"아마 B 남자친구만 이번에 3번째일거에요. 다른 친구들은 엄청 가까워요."


오 마이... 

그녀는 나를 오늘 전시하러 나오라고 한건가?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은 다 전시가 끝났으니 나를 부른건가?

나는 이 자리에 와서 무엇을 해야하지? 술을 마셔? 밥을 많이 먹어? 아님 도망가?


애초에 이런 상황, 여자친구의 친구들과 그 남자친구들과 함께하기, 매뉴얼에서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구글에 "여자친구 친구 남자친구" 이렇게 검색을 해보았더니 무슨 쓰리섬 하는 이야기나 나오고.


그녀는 나에게 실수를 했다. 

그녀는 내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을 했어야 했다. 

나는 오늘 분명히 실수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의도를 한 것이 아니고 분명 그녀의 잘못에 의한 것이다.


"여기 앉으세요. K씨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예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네요. 다음달에 결혼하신다고요?"


다들 서로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벌써 왁자지껄하다.

하하호호하하호호.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내 이름과 나이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굉장히 불편했지만. 어차피 실수할 것에 이런 사소한 것을 실수할 수는 없지.

한명 두명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선 분명히 이름을 이야기 했지만.

지금은 이미 까먹었다. 어.. 


다음달에 결혼한다는 그녀의 친구는 탤런트 이민영을 닮았다. 그녀와 결혼을 하려한다는 남자는 이찬을 닮았다.

둘은 결혼한지 10일만에 헤어지게 될까? 일단 잘 어울려 보였다. 

나의 그녀와 가장 친하다는 여자분은 혼자 왔다.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꼉'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리게된 이유를 물었으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귀엽지 않냐고 했는데 외모로는 전혀 귀여운 분이 아니었다. 꼉.. 꼉...

다른커플은 여자분은 AV배우처럼 생겼었다. 걔 이름이 뭐더라. 남자분은 AV에서 동정컨셉으로 나오는 애 같았았다.

잘 어울리는 한쌍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마지막 커플은 별다른 인상이 없었다. 백지와 같았던 남녀...


그네들은 서로서로를 XX씨, OO씨라 부르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고 부어라 마셔라하고 있었다.

아마도 알게된지 꽤 된 것 같았고, 이상하게도 나 포함 남자들은 나이가 전부 비슷했다.

다만 나는 생일이 1월인지라 그네들보다 원래는 한학번 위였을 것이었다.


백지커플의 남자가 갑자기 묻는다. 

"K씨는 학번은 어떻게 되세요?"

"아 예 저는 97학번입니다."

"어 저희랑 똑같네요? 1월생인데 늦게 들어가셨나봐요?"

"예 재수를 해서요."

"재수해서도 의대 가셨으면 훌륭한 거죠."

"재수했을때 의대밖에 안 붙었어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조기입학했었다가 Y대 갔다가 반수했었어요."


반수? Y대?


"Y대 어디 과요?"

"아 예 전기전자공학부요"

"예? 아 저 거기 썼다가 떨어졌는데"

"예 저는 거기 갔다가 별로고 원하던 과도 아니여서 다니지도 않고 휴학했어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아니 일어났다.


"아~ ~~ 그러시구나. 저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요"


그녀가 쫓아왔다. 


"왜 그래요? K씨?

"아니요 좀 어지러워서"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그 대학을 가고 싶어했고.

그 대학이 있는 신촌에서 고등학교때 놀러 다녔고. 술마셨고.

고3때는 수능이 망해 그 학교를 못 갈 것 같아 원서도 안내고.

결국 재수해서 성적이 되어 밀어넣었지만 

원서접수 예비번호 1개 차이로 떨어졌는데.

다들 될거라고 3월 되기 전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결국은 되지 않아 돌고 돌아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쟤가 다니지도 않을 학교를 등록을 해서 내가 이렇게 돌아왔나?


자리에 돌아와보니 별 변화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꼉이 좀 취해보였다. 아니 취했다.

옆자리에 있는 친구의 남자친구들에게 그녀는 계속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아직도 제게 가끔 연락 오거든요. 저랑 다시 만나고 싶은거겠죠? 받아줘야하나?"


남자들은 이럴때 본인 생각과 다른 대답을 해야한다. 반드시


"그럼요. 기다려 보세요. 다시 연락 올거에요. 잘되시기를 빌게요"


사실 저럴때 남자들이 연락하는건. 심심하거나. 심심하거나. 심심한데 잘 사람이 없거나서다.

끝난 관계를 지난 후에 다시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계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꼉씨가 많이 취해서인지 김찬 커플, Y대 반수 커플, AV 커플, 그리고 우리.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그래 집에 가자. 집에 가. 

나는 좀 쉬어야겠어. 정신소모가 심하다.


"우리 1차 끝났으니 이제 저번에 갔던 그 노래방 가요! 2차 가야죠!"

뭐라고? 어떤 미친 새끼야?????

마침 또 그 Y대 반수한 놈이었다.


"예? 노래방이요? 노래방을 왜 가요??? "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꼉씨를 안고 가고 있었고, 나머지 커플들은 자기네들끼리 왁자지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노래방을 간다고요? 왜요? 저기 취한 거 안보여요?"

"꼉씨는 원래 자주 취해요. 저러고도 노래방 가면 제일 잘 놀아요 ㅎㅎ"


아... 이 무리들은 미친 무리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회사에서의 회식이 아니면 노래방을 절대 가지 않는다.

집에서 멀쩡하게 원곡 들으면 되는걸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잔뜩 취해서 냄새나는 그대로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냄새를 풍기며 꿱꿱 노래를 해대는건가?

거기에 무슨 노래방만 가면 언제들 그렇게 친했다고 얼싸안고 껴안고 손잡고 어휴...

회식때 가는 노래방만으로도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쌓아가고 있는데.

아니... 내가... 왜... 그녀의... 친구들과... 친구의 남자친구들과... 노래방을 가야해??


"다 들었습니다. K씨 중학교때 드럼 쳤다면서요. 노래 잘 하실 것 같아요!"


내가 드럼 쳤지 노래했냐...

그런데 여지껏 내내 가는 집단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교때 신입생때 "저는 드럼을 쳤었습니다." "노래해 노래해!"

레지던트 회식때 "저는 드럼을 쳤었습니다." "노래해 노래해!"

내가 드럼쳤던 밴드는 동네 친구들하고 한 펑크밴드.

3코드에 저속한 가사를 얹은 지금 생각하면 쓰레기 밴드였는데.

"네 엉덩이에 사정하고 싶어 네 가슴골에 사정하고 싶어"

"너네 이모랑 자고 싶어. 너네 고모랑 자고 싶어. 너네 할머니랑 자고 싶어" 

뭐 이런 노래를 부르던 밴드인데 노래방에서 노래하는거랑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아무튼 난 펑크밴드 생활 청산한지 오래이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

막상 노래방에 가서는 별 탈 없이 잘 놀아드리고 왔는데.


오늘 이 자리는 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미 맘이 많이 상해있었고. 그녀는 내게 실수를 했으며.

그녀의 친구는 나를 대학에서 떨어뜨린 인간이고. 


내 등 뒤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이 꼉이라는 여자를 떨궈주고 나는 집에 가야겠다


"K씨. 저 안 무겁나요?"


??? 누가 말하는거지? 그녀는 저 앞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K씨, 노래방 좋아해요? 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우리집에 같이 갈래요?"

"예?" 


꼉씨였다. 제일 잘 논다는 그녀가 많이 취했나 보다.


"친구하고 K씨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K씨하고 저희 집에서 술 한잔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가면 아무도 모를거에요"


아놔... 이 여자가 지금 나보고 같이 자자는건가? 자기 친구가 저기 있는데?? 

아무도 모르긴.. 다 알겠다 이 여자야... 


"제가 보기엔 그녀는 저에게 딱이에요. 그리고 전 꼉씨에겐 별로 관심 없고요."


"같이 가기 부담스러우면 저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시고 노래방 왔다가 다시 오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저는 노래방 갈겁니다."

"K씨... 혹시 게이에요?"

"예?"

"게이냐고요? 아님 말고. ㅎㅎ 얘들아! K씨가 노뢔봥에서 뫄이킈 아놓는데다!!!"


멀쩡하게 나와 대화하던 꼉씨가 갑자기 다시 취한척을 한다.


뭐지? 난 지금 희롱당한건가??

집에 가야겠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 내 할당량은 하고 가야겠다.

나는 꼉씨를 내려주고, 노래방에 들어갔다.

큰 방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과 그녀의 친구들의 남자친구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짜라짜라짜짜짜가 나오는 트롯트를 부르고 있었다.

다들 관심이 없을때 나는 내 할일을 했다.


3곡을 연달아 예약했다.

다른 이들이 예약해놓은게 5곡정도 되었고 그뒤에 3곡을 추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20년 넘게 나는 이 노래들만 노래방에서 불러왔다.

회식이건 친구들과의 자리이건 교수님들과의 자리이건.

그리고 오늘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곳에 왔고. 마찬가지로 이 노래를 부른다.


5곡을 부르는동안 꼉씨는 내 반대편에 있었다.

책상 아래로 그녀가 다리를 뻗어 내 허벅지 안쪽을 긁었으나.

나를 흥분시키기 위한 곳에 닫기에는 그녀의 다리는 너무 짧았다.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여..


5곡이 다 끝나고 내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대에게'를 고등학교때 학교 농구부 응원하며 배운 율동을 곁들였다. 

'세상의 뿌려진 사랑만큼'을 부르며 여자파트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다른 이들이 '뽀뽀해'를 외쳤지만 무시.

'어젯밤 이야기'를 부르며 초등학교때부터 동생과 연습한 춤을 추었다. 환호.


그리고 나는 일어났다. 가야할 시간이다.

나는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나는 어차피 3곡만 부른다.


"저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취해서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노래도 그렇게 잘하셔놓고 가시는거에요?"

"장난 치시는거죠? 얼마 안남았어요. 같이 가요"


"아니요. 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실수를 한 것은 그녀

내게 실수를 한 것은 그녀의 친구들.

내게 실수를 한 것은 그녀의 친구들의 남자친구들.

  

이렇게 세번째 이유를 찾았다. 

그녀와 헤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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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칠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귀찮다. 일단 쓰고 봤음... 





  


 




 





Posted by 빨간까마구

2013년 5월 20일 새벽 1시 50분.

내가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두번째 이유의 날.

그녀와 헤어지기로 맘을 먹은 이후 한달이 흘러가는동안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4월 18일 을밀대에서의 나의 행동에 서운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이야기한 후에 생각해보니,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그렇게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하다니.

내가 참 몰상식한 행동을 했군. 이라 생각이 들었고.

어찌되었고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미안해요. 내가 참 예의가 없었네요"

물론 나는 내가 생각한, 그녀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없이 우리 사이는 너무 좋았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듯이 행동을 하였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생각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설명을 해야했기때문이다.


"오빠 삐졌어요?" "아니 삐졌다니 무슨 소리야" "삐졌잖아요. 아니면 왜 그래요?" "안 삐졌어"

삐졌다는 말은 참 내가 싫어하는 말이었다. 

내가 기분이 안 좋고, 내가 화가 났고, 내가 울고 싶고, 내가 우울하고, 내가 야한 생각을 하고

어찌되었건 내가 말을 하고 있지 않을때 그녀들은 전부 내게 '삐졌냐'고 이야기 했다.

나는 삐진적이 없다. 

나는 화가 났을 뿐이고, 울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삐졌냐는 말을 그녀들이 내뱉는 순간, 나는 삐진 인간이 되고, 삐지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삐졌냐고 한 적이 없었다.

그녀와 있으면 나는 삐질 이유가 없었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하는 선택이 늘 나의 맘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녀의 취향은 참으로 고상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랐다.

커피 한잔값을 아껴 지구 반대쪽에 보내는 ... 이라는 가요의 한 구절에 뭔가 와닿아

세상을 바르게 살기로 했다는 그녀는

어찌보면 나의 평소 생각과는 전혀 반대 방향이었지만.

재잘거리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 즐거움만으로 나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선택들에도 내게 참 괴로운 순간들은 있었다.

괴로운 시간 중에도 가장 자주 오는 괴로운 시간은 바로 '야구 직관'이었다.

그녀는 LG의 골수팬이었다. 골수팬. 

김용수 선발 시절부터의 팬.

두산의 팬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LG를 응원했다는 그녀는 2주일에 한번은 야구장을 갔다.

문제는 내가 LG와는 라이벌이었던 기아의 팬이라는 것.

아니 정확히는 90년대 LG와의 라이벌이었던 해태의 팬이었던... 

그녀와는 달리 나는 아버지가 해태팬이어서 그대로 팬이 된 경우였다.

1년에 한,두번은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광주까지 응원을 가고는 했다.

아버지는 그날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야구장에서 술을 드시면서 

"너는 고향을 잊어서는 안된다. 네가 태어나긴 서울이지만 고향은 전주야."

아버지가 술을 덜 드시면 광주에서 야구 끝나면 전주까지 올라가서 고향을 둘러보는 것이 1년의 한번의 의식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쫓아가는 것이 매우 좋았다.

시골 어르신들은 내가 그 집에 가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렇게 좋아하시며 용돈을 왕창 주고는 하셨다.

"역시 서울애는 달라. K 쟤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면서요. 아비는 돈없어 대학을 못갔는데 쟤는 잘되겠지"


그녀가 처음 야구장을 가자고 했을때, 나는 차마 내가 기아팬임을 밝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은 기아와의 경기였기때문이다.

그녀와 만난지 이제 막 1달무렵 되었을때, 그녀는 올해의 LG는 다르다며 흥분해 있었다.

물론 나는 매년 기아도 다르고 LG도 다르지만 성적은 똑같아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야구는 잘 모른다고 하였다.

그녀는 무려 이대X 선수의 팬이었다.

발은 빠른 그 선수는 발만 빠른 것으로 놀림을 받는 선수였다.

그녀가 부르던 '슈퍼소닉 이대X 안타'라는 응원가는 들을 수록 드는 생각이

차라리 '슈퍼소닉 이대X 도루'라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LG의 그 하고 많은 선수 중에 왜 하필 쟤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선수가 뭐가 좋아요?"

"잘생겼잖아요. 몸도 날씬하니 좋고"


나는 저게 야구선수의 몸이냐? 모델의 몸 아니냐?라고 코웃음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년 끝나면 FA라는데 제발 우리팀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바램과 달리 많은 LG팬들은 그가 남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요! 남았으면 좋겠네요. FA는 뭐의 약자에요? 제가 아는 FA는 축구협회인데, Football Association."


아차... 나도 모르게 축구 이야기가 나왔다.

난 축구를 좋아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내게 축구선수들의 그 자유로운 움직임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워낙 어렸을 적부터 축구를 보다보니, 아무래도 K리그는 B급 선수들이 뛰는 리그라 생각이 되었고.

고등학교때 나의 눈을 사로잡은건 리버풀, 그리고 이후에는 앙리 이후에는 아스날이었다.


"아 맞다 K씨 축구 좋아한다고 하셨지. 아서날? 아스날?"

"아스날이요. Arsenal. 아.스.날."


아차... 날카로워졌다. 이럼 안되는데.


"아스날은 영국의 전통의 축구 명가로 우승을 많이 한 팀 중에 하나로

프랑스인 출신 감독인 벵거가 부임한 이래 황금기를 맞아 

리그 우승, FA 우승 및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을 거뒀다.

유럽의 강호들이 벌이는 챔피언스 리그에 매년 진출하고 있지만.

근래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매년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7번정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축구가 몇명이서 하는 경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저번에는 축구에서 골키퍼가 야구의 지명타자랑 비슷한 거 아니냐고 물어 나를 한번 큰 혼돈에 빠지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녀의 질문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면이 있어서 답할때면 늘 진땀을 빼고는 했다.


"아스날 잘하나 봐요. 4등이면 준플레이오프죠?"


그녀의 질문에 나는 축구리그에서 플레이오프를 하는 나라도 있지만 영국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2부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를 해서 승격이 되기도 한다. 라고

그녀와 야구장을 갔던 첫날에 설명을 했었다.


괴로웠다.


그녀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좀 하고 있으면.


슈퍼소닉 이대X 안타를 외치고는 했다.

타석에는 이병규가 나와있었는데...


귀여웠다.

그녀의 일방적 사랑이 지금은 그에게 가 있지만 언젠가는 내게 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와 한달에 1~2회의 야구장 데이트는 이어졌다.

다행히 그녀는 더이상 나를 기아와의 경기에는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한번 더 갔으면 사실 나는 기아팬이라 커밍아웃을 할 뻔 했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축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스날'이라는 구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 

그녀는 인터넷으로, 아니 정확히는 네이버로 '아스날'을 검색을 해서

나오는 글들을 읽고 있었다.

정확한 정보는 별로 없는 글들을 그녀는 읽고, 내게 이야기 해 주었다.


"아스날에 젠킨슨이라는 선수가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아스날 벵거 감독님은 피레스라는 선수를 싫어한다던데요?"


축구 경기를 보지 않고, 정보만을 습득해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질문들은.

나로 하여금 커피숍에서 물을 3~4잔씩 리필해가면서 설명을 해야할 정도로

얼토당토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잘 못 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일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영국의 정론 잡지들을 그녀에게 읽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에서도 슈퍼소닉 이대X 안타만 외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나의 LG'라는 표현과 달리 '아스날'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긴장이 되었다.

그녀가 아스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스날에 대해 설명을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2013년 5월 20일 새벽 1시 50분.

카톡이 왔다.

"축하해요 K씨. 아스날이 뉴캐슬을 이겼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차피 이길 경기여서"

"아 그래요. 뉴캐슬 약한 팀이구나."

"아니 그건 아니고요."

"아 그럼 뉴캐슬은 강팀이에요?"


아스날이 뉴캐슬을 맞아 시즌 최종전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나는 집에서 맥주를 혼자 4병째를 마시고 있었다.

괴로웠다. 기쁘지 않았다.

코시엘니가 골을 넣었지만 토튼햄이 골을 넣을 경우 복잡해지는 상황이었다.

토튼햄. 아스날의 런던 라이벌...

왜 나의 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 챔스 진출을 확정해야 하는가.

나의 팀이 왜 이렇게 되었나.


"뉴캐슬은 중위권팀이에요. 괴롭네요."

"왜요? 좋은 날 아닌가요? 그 플레이오프.. 아니. 그 챔피언스 리그에 나간다면서요."


그녀에게 나의 이 다행감과 동시에 드는 자괴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취해 있었다. 아니 취해 있지 않아도 지금 이 시간에 그녀에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쎄요. 나가긴 해서 다행인데 다음 시즌에도 희망이 없어서요"

"왜 그러세요. 올해 LG는 다르듯이 아스날도 다를거에요"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이 카톡을 이어가야 하나?

취했다고 할까? 아니면 피곤하다고 할까? 자는척할까?


하는 와중에 그녀가 카톡을 보냈다.


"아 그런데 그 아스날 출신 반페르시가 득점왕을 했던데요? 축하드려요"



아... 

아스날을 버리고 라이벌 중의 라이벌 맨유로 간 

거기서 득점왕을 하고 맨유를 우승으로 이끈 반페르시를 축하한다고??


그녀와 더 만날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잊고 있었던 감정이 다시 올라와.

나는 그녀와 헤어지려 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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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실제 저자와는 단 1%도 상관이 없는 순수 창작물입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