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쌍다반사/닥터 까마구의 진료소'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6.08.26 버섯 이야기
  2. 2015.05.15 20150513
  3. 2015.04.17 어떤 사고들에 대한 기억
  4. 2009.03.20 흠... 편해졌냐?
  5. 2008.12.04 A라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 8


 오늘 뭘 보다가 이런 것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꽂혀서 매직머쉬룸을 검색하고 좀 놀라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사실...

이 기사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란셋 저널에 실렸다고 되어있는게 더 흥미를 끌어 찾아보았더니, 관련 내용이 타임지 등등에도 실렸더만.


 http://time.com/4338947/magic-mushrooms-for-depression/



그렇게 몇 개를 찾아보다 좀 흥미로운 것을 알게되었는데  

론리플래닛에 대구에 가면 스페셜 머쉬룸이 있다는 언급이 있고

이것을 보고 대구로 간, 또는 가려고 하는 외국애들이 있다는 사실을...

 

http://www.waygook.org/index.php?topic=49282.0




 2004년에 작성된 한 글은 

이 과정을 실감나게 그리지만

결국은 잘 모르겠다... 하고 끝낸다. 



http://www.mytripjournal.com/travel-7424-taegu-magic-mushrooms-friday-night-itaewon-crew-korean-barbecue



그러고 보니 올해 히트한 곡성에도 독버섯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3일전 한 건장한 사내가 동남아시아 여인을 휠체어 앉혀서 외래로 들어왔다.

타 병원에서 두차례 혈액투석을 하였고, 앞으로 우리 병원에서 투석을 하겠다고.


그녀는 그 남자분의 처제였다. 

1년전까지 건강했던 그녀는 7개월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숨찬 증상과 빈혈이 발생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의 병원에서 검사를 했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태국의 방콕에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베트남까지 가서 병원에 방문하였으나 발견을 못하고, 그 동안 빈혈에 대한 주사만 맞았다고 한다.

증상은 안 좋아지고 있었고, 다시 캄보디아에 있는 병원에 갔을때는 투석이 필요하다고 듣고

한국인 봉사단이 소개해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왔다.


한국에 와서 소개해준 병원의 분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분원에서는 본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투석을 진행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만큼 안좋았기에, 응급실에서 투석을 받았다.

당연히 환자는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으니 그 3일간의 치료비용은 약 50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기타 자세한 검사를 시행하려 했으나 금액적 문제도 있고

캄보디아로 돌아갈 예정이라 자세한 검사는 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보호자에게서 듣고, 소견서로 확인을 하였다.

환자는 한국어 공부를 해서 말을 잘했었다고 하나 언젠가부터 한국어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하였다.  

두번의 투석을 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요독은 쌓여있는 상황으로 생각했다.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아 입원을 권유하였으나 

환자의 보호자는 거부하였고, 입원 없이 투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투석을 시작.

투석을 시작하는 경우 보통 30분 내에 문제가 생기기에 관찰하였으나 특이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50분 되던 때에 환자는 흔히 얘기하는 경기, 발작을 하였다.

요독이 쌓인 환자에게서 발작을 하는 것은 가끔 볼 수 있는 상황이기에, 일단 발작을 멈추는 약물을 사용.

이후 환자는 더 이상의 발작은 없었다.

하지만 발작의 원인을 요독으로만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CT를 촬영하였다.


그리고, 그 CT를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한장 한장을 돌려보면서 점점 더 마음은 무거워졌다. 


먼저 두부의 CT에는 이번에 출혈을 했을 부위가 관찰이 되었다. 

좌측 측두엽과 전두엽 후두엽 부위에 모두 출혈이 보였다.

그 곳 외에도 양측의 대뇌 여러부위에 과거의 출혈의 흔적들이 보였다.

과거 출혈의 흔적 부위는 종괴처럼 보이는 부위들과 함께 있었다.

병변들로 인해 대뇌의 부종은 매우 심한 상황.


뭐야... 이게... 이제 22살인데...


환자의 의식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급히 환자를 옮겨 관찰을 하며, 이미 사용하던 약물들을 다시 투여.

입원 당시에 시행하였던 검사 결과에서는 심각한 출혈성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발작 4시간 후에 환자의 반응은 더더욱 나빠졌다.

한측의 동공반사가 소실.

혹시나 해서 다시 CT를 촬영하였다.  

아까 출혈부위는 좌측. 이번에는 반대부위인 우측에서 대량 출혈.

양측의 출혈과 부종으로 보았을때 뇌간의 압박이 곧 진행될 것.


환자의 형부에게 사망의 가능성 높음을 설명하였다.

언니는 캄보디아에 있는 친척들에게 계속 울면서 전화를 하였다.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혹시 환자의 모습을 영상통화로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코마에 빠지게 되고 약 6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가호흡도 소실되었다.


다음 날에는 환자분의 어머니가 캄보디아에서 오셨다.

딸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하였다.

알수 없는 말을 하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팔을 만지고 하였다.


아버지는 안 오셨네요?라고 했더니 캄보디아 국왕의 생일기간으로 축제라 비자가 안된다고...


...


하루를 더 보낸후 보호자는 환자의 기도삽관을 제거해주길 요청했으나 이는 법적으로 불가함을 설명하고.

오래 가시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환자는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


환자의 원인 질환은 알 수 없었다.

CT에서 예전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다발성 출혈부분은 여러 질환들에서 가능한 것.

MRI를 찍을 수 있었다면 종양의 전이 이후 발생한 출혈인지 아님 그냥 출혈만 있던 것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입원시에 검사에서는 전신성 홍반성 낭창 또는 기타 자가면역 질환일시에 보일 수 있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만약 환자가 종양의 전신전이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것..

하지만 이것이 자가면역질환에 의한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그렇다면 한국에 온 시기가 빨랐다면, 이렇게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환자가 의식이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불과 2~3시간밖에 안되고 바로 문제가 생겼지만

그동안 봐왔던 어떤 환자보다도 맘이 안 좋았다.

약 10년여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의사생활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 환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린 타국의 환자여서 그랬는지.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녀는 자신의 나라에서 그냥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망을 하는게 나았던 것일까?

아님 한국에 와서 원인질환이라도 이야기를 듣고 사망을 한게 나은 것일까?

아니 이런 상황에 뭐가 낫다고 생각하는게 의미가 있는가?

이 환자가 한국인이면 진단을 하고, 치료가 되었을까?

내게 스쳐간 환자들 중에 이런 환자는 없었을까? 

스쳐가서 나는 잊었지만 그 환자는 나를 증오하고 있는거 아닐까?


2015년 05월 15일 17시 54분에 환자는 사망했다.

영어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

보호자들에게 목례를 했다.


만약 다음 삶이 있다면

1년 가까이 아프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지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1. 10년전 나는 GOP의 병사의 진료를 하는 군의관이었다.

24시간 철책근무가 이루어지기에 군의관인 내가 직접 순회진료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산길로 약 20km정도를 경계근무를 하던 부대이고, 소초가 15개인가 되었기에 

일주일 중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이 15개의 소초를 몇개씩 묶어서 진료를 나갔다.

아침 9~11시에 운전병이 모는 앰뷸런스 옆에 타고 나가서, 오후 5~7시면 돌아오는 일정.

GOP부대는 GOP에서 내내 생활을 해야하기에.

다른 간부와 마찬가지로 1달에 2박 3일의 외출만이 허용되었다.

의무대에서 생활을 했다. 

병사들이 기거하는 곳에는 그나마 바닥에 열선이 깔려 있고, 난로가 있었다.

군의관에 방에는 아무런 난방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전기장판과 열풍기로 겨울을 보냈다.

10월 15일인가 눈이 왔다.

온도계로 영하 20도, 체감온도 35도, 심심하면 정전되는 곳에서 겨울을 났다.

강원도, 그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부대, 설악산 자락이 아닌 금강산 자락이 있는 부대.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2. 순회진료를 마치고, 의무대에서 쉬던 어느 11월날이었다.

대대 간부가 갑자기 의무대에 뛰어 들어와서 

"낙상사고가 났으니 어서 출발하세요!"라고 외쳤다.

간단히 옷을 입고, 대대본부에 갔다.


6M 높이에서 병사가 떨어졌다. 현재 의식 상태는 모르겠다.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런 상황이었다.


뇌출혈 내지 두부 손상 의심, 이로 인해서 경련을 하는 것이라면 응급상황이다.

척추 손상도 당연히 유발 가능하며, 어떤 종류의 외상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낙상을 하면서 경추를 다쳤다면, 환자를 비의료인이 조치하는게 경추손상의 악화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응급!

평상시에 이용하던 앰뷸은 늦을 것 같아서, 그나마 빠른 지프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리고 이 사고에서 겪었던 가장 화가 나는 일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지프에 탄 그때부터 나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그 전화는 사고 현장에서의 전화가 아니었다.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단 정보과장, 작전과장, XX과장, AA과장 등 기억도 못할 사람들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다.

연대의 온갖 장교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계속 받다가 도저히 안되어 전화를 안받았다.

나중에 질책을 받을 수 있지만, 환자를 위해 필요한 전화 외에는 안받기로 했다.

전방은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고, 언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기에, 핸드폰 배터리는 소중했다.


그 와중에 연대의 모장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의관님 헬기를 띄워야 합니까?"

"아니 제가 아직 환자도 못 봤는데 어떻게 결정합니까?"

"띄울거면 지금 연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띄워놓고 안 타게 되면 좀 곤란합니다. 잘 결정하셔야 합니다."


이런 전화를 받다가 사고가 난 현장에서의 보고는 이런 전화들로 인해서 바로 못 받았다.

내가 직접 전화해서 상황을 확인하니 다행히 환자가 더 악화된 것은 없었다.


차를 매우 빠르게 몰아서, 평상시에 1시간 30분이 걸리던 거리를 40분만에 도착했다.

사고 이후 40분.


그때까지 내가 받은 전화는 70통정도 되었다.

"어떻게 되어가나?" "환자 상태는 어떤가?" 하고 묻는 아무런 의미 없는 전화들로 70통


현장에 도착해보니.

병사는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뇌출혈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경추 손상의 가능성도 낮아 하지 운동을 시켜보았다.

큰일이다. 하반신의 감각 이상과 운동 이상을 보였다.

애초에 보고 받았던 경련을 한다는건 그냥 떨고만 있던 상황.


헬기를 띄우기로 했다.

내 선에서 끝낼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환자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경우 

해당 부대의 대대장 및 중대장, 소대장은 내게 아쉬움을 표시할 수도 있지만(실제 들어본 적 있음.)

환자가 우선 아닌가. 

이학적 검사만으로 환자를 판단하기는 위험하다. 최첨단 의료시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문제는 그 소초에 헬기접근이 되지 않기에, 헬기장으로 환자를 태우고 이동을 했다.

헬기가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가는데 다시 40분이 걸렸다.


내가 대기하는 대대본부에서 사고위치까지 40분

환자 조치를 위해 10분

사고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헬기장까지 40분

1시간 30분만에 우리는 헬기에 탔다.

헬기에 타고 강릉병원까지 10분밖에 안 걸렸다. 


병원에서 CT를 촬영했고, 다행히 뇌출혈이나 척추골절은 보이지 않았다.

못 움직이던 하체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상황은 이렇게 종료가 되었다.


이때까지 내가 받은 전화가 115통이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휴전이후 최전방 철책근무를 한지가 60년이 가까워 오는 때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여야할 집단의 위기대처란 이런 것이었다.

끔찍했다.


사고가 생기면 위의 체계가 발동하며, 일원화된 연락을 받는 그런 상황은 없었다.

중구난방으로 모두다 보고를 받으려 했다.

그래.. 10년전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군생활을 한 친구네 부대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마찬가지였다. 



3. 한달이 지난 12월의 어느 날 오후.

대대본부로 간부를 모두 모이라고 했다.


부대에서 관리하던 소총이 2정 없어졌다.

???????

의무대 바로 옆에 있던 곳의 총기함에서 K2 2정이 없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했는데 사실이란다...


당장 화약고를 조사했다. 소총만 없어진 것과 실탄이 함께 없어진 것은 천지차이. 

다행히 (?) 탄약 및 수류탄의 수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당시 그 총기를 관리하는 곳에는

매일 욕을 달고 사는 간부 한명과 매번 일을 할 때 위의 지시방향대로 못하는 간부 한명이 있었다.

부대의 모두다 누군가 이 간부들이 맘에 안들어서 엿먹이려고 그런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소총이 없어진 날 대대 본부의 주위를 샅샅히 수색했다. 

약 6시간정도를 수색했으나 없었다.

그렇게 매일을 수색했다.


연대장이 올라와서 대대본부의 전부를 대상으로 훈시를 했다

"자 다들 눈 감으세요. 예.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 아는 사람, 아니면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한 사람 손 드세요"

...

초등학교때도 단 한번도 저런거 해서 손든 사람 없는데, 총기를 훔친 애가 손을 들리가..ㄷㄷㄷ


어쨌든 그렇게 이틀이 지나갔다.


주요 병사들은 매일 끌려가서 하루에 16시간씩 심문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대대본부에 있던 사람들은 외부로의 출입전면통제.


이틀이 지난 점심 무렵에 간부들만 대대본부로 모이라고 했다.


"저희가 다시 조사한 결과 탄약 2박스와 수류탄 6개가 없어졌습니다"


오??????????? 뭐라고?????????????????


상황은 완전 변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총기들과 탄약, 수류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갑자기 그가 이것들을 가지고 무차별 살육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전까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던 탄약들이, 갑자기 숫자가 바뀐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란다.

그 수를 센게 아까의 덜떨어진 간부였다.


웃기게도 이 시점에 수사를 하던 이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었으니

총기함에 머리카락이 두개 끼어 있었다.

'아니 그게 범인의 것이라는 증거가 무엇인가요?'라 묻고 싶었지만, 어쨌든 그렇단다..

YTN에 최전방 부대에서 총기와 탄약 등이 없어졌다 나왔다. 


국방부 조사본부인가에서 올라왔다. 

오.. 이제 좀 과학수사를 보려나 싶었다.

하지만 이때 된서리를 맞은 건 우리였다. 


'머리카락에 DNA가 있을테니, 전 부대원의 혈액을 체취하라!'


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리고 그 부대원의 혈액체취는 의무대에서.


담당 지시를 내린 수사관에게 직접 가서

"아니 우리 의무대 병사들이나, 제가 총기 탈취를 했다면, 이런 검사는 전혀 의미가 없는거 아닙니까?"

"좀 더 정확한 검사가 되어야 하기 위해 채혈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하지만...


"군의관님이나 의무대 병사들이 총기 탈취를 하지는 않았겠죠~~~" 


이런 수사관들이 만화 김전일에서 주로 잘 못 하던데... 



결국 대대의 간부들까지 전부해서 약 600명의 채혈을 했다.

채혈을 한 결과는 확인하는데 1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대대 간부들 및 병사들은 거의 매일 총기가 없어지기 전일과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 적어야 했다.

해당 부서의 간부 및 병사들은 이후도 매일 12시간 이상의 조사를 받았다.

부대에서 누가 욕했나 누가 괴롭혔나를 매일 병사들에게 적게 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1주일.

"머리카락에 DNA는 없었고, 혈액형은 A형이다"라는 결과를 듣게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대 주위를 병사들 전부 데리고 수색을 하고.

주요 인물들 조사를 하고.

부대내 관계들에 대해서 조사를 당하고.

1주일이 넘고 2주일이 넘어가니 처음에 탄약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만큼의 불안감은 없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내가 설마 죽겠나 싶었다. 


2주일을 넘길 무렵에 경찰인가와 합동으로 조사를 한다고 변경되었다.

그동안 있었던 수사관들은 내가 봐도 총기를 찾지 못 할 것 같았다.

경찰이 와서 첫번째 내린 결론이.

내부인의 소행만으로 단정하기엔 어렵다고 했다.


해발 800m의 고지에, 이곳 대대본부 까지 오려면 위병소가 3개가 있었지만.

나도 맘만 먹으면 이곳까지 위병소를 지나지 않고 올라올 수 있었다.

위병소는 그냥 찻길 중간에 쇠사슬만 채워놓은 수준.

사람은 그냥 우회할 수 있었다. 


경찰들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과거 병사 및 간부들 중에 금전적인 문제나 사건이 있던 간부들을 조사한다고 했다.


그렇게

외부로 눈을 돌린지 일주일만에 범인을 잡았다.


전역 간부들의 휴대폰 내역을 뽑았고, 그 중 한 명이 부대 인근에서 휴대폰을 사용한 것을 확인.

그리고 그 간부는 전역할때 가지고 있던 현급 2000만원을 전부 쓰고.

강간 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이를 말리던 사람을 폭행.

합의금을 마련을 해야할 상황이었다.

...

그리고 그 인간이 친척집에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 덮쳐서 잡았다고...


결국 밝혀진 사건은.

돈이 급했던 간부가 같이 일했던 병사를 꼬드김.

평지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아주 가볍게 위병소 3개 우회를 하고, 해발 800m 전방부대까지 들어옴.

아무런 저지도 없이 탄약고와 무기창고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훔침.

만약 저지 당했으면 바로 수류탄 터뜨렸을거라고.

의무대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라, 만약 내가 화장실 가면서 발견했으면 수류탄 바로 맞았을 뻔 했다. 


이들의 실수는 총기탈취 후에 발생하는데... 800m를 너무 급하게 내려오느라 발을 삐끗했다고.

원래는 바로 이 총기와 탄약 가지고 은행(!)을 털려고 했는데, 발 삐끗한거 나을때까지 기다리다가 체포가 되었다... 


사건이 모두 해결되고 나서. 군대란 정말 무능한 조직이구나라고 생각도 하기 전에.

사건 당시에 병사들에게 조사한 것을 토대로 군 내에서 다시 조사가 나왔다.


대대 본부의 2/3의 간부가 전출, 그러니까 다른 부대로 옮겨야 했다.

폭언, 폭행, 성추행, 가혹행위, 금품갈취 등등..

충격이었다. 많은 간부들이 그런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거.


당연히도 나는 병사들에게 위의 행위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전방에서의 생활에 나는 병사들을 진료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사건이 모두 마무리가 되고 나서 부대에 남은 것은 증오뿐이었다.

큰 잘못을 한 간부, 병사들은 여기저기로 전출을 갔다.

병사들 및 간부들의 불만사항을 매일 쓴 내용이 있었다.

문제 행동을 한 이들은 전부 조사를 했다.

누가 어떤 일로 조사를 받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간부가 폭언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병사가 이곳에서 생활을 잘 못하는지.

모든 것을 서로 다 알게 되었다. 


이후의 생활은 너무도 끔찍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흠 확실한 건 꽤 편해졌다는 것이다.
 초반과는 달리 잠은 그래도 꽤 잤지만.
 주말빼고 집에 아예 가지 못하였던
 지옥과 같았던 1,2월이 끝났고.

 나는 
 E모 병원의 내과 2년차가 되었고.
 1년차로 무려~ 6명이라는 꽤 많은 숫자가 들어왔고.
 빡시디 빡샜던 심장내과에서 내분비 내과로 옮겼고
 평균 환자수 30명에서 15명으로 반띵을 하였고.
 응급실 환자도 initial로 보지 않는.
 엄청난 변화를...

 편해졌다는 건. 시간이 많이 난다는 것인데.
 그동안 지나치면서 밥 한번 먹지 못 했던 후배들과의 저녁식사.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온 트래비스의 내한 공연.
 그리고 곧 다가올 오아시스의 공연.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책임은 더해진 것은 사실이지.
 
 암튼.
 오늘도 난 가벼운 마음으로 당직의 밤을 나고 있고.
 그닥 재미는 없어 보이는 키친이라는 영화를 볼 예정이며.
 내일은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 할 듯 싶다.

 그리고 하나만 더 하면 좋을텐데.
 아니구나
 한 세개 정도만? ㅠㅠㅠㅠㅠㅠㅠ
Posted by 빨간까마구


 새로 하고 있는 의학드라마 .
 이른 바 약간의 병맛을 띄고 있고 과장된 내용도 많지만.
 밖에서는 우리를 저렇게 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재미나게 보고 있다.

 물론 병원에는 이재룡같은 뜨거운 스탭은 찾아보기 힘들며
 김정은같은 미모의 의사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고
 중환자실의 침대 사이의 간격은 2M도 되지 않으며
 응급실의 진료라는 것의 상당부분은 인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
 작고도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나의 이야기와 겹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 감정이 이입이 된다는 것.
 드라마의 가장 큰 재미가 아닐까 싶다.

 
 요즘에 내가 있는 과는 호흡기 내과로.
 주로 폐 쪽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입원하는 과이다.

 이른 바 이야기 하는 폐렴도 있으며 결핵도 있고 폐암도 있고...
 폐렴과 결핵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만성적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이다.

 "숨이 차다" 라는 증상은.
 우리 20,30대에게는 그리 흔한 증상은 아니다.
 물론 예전엔 1.5Km 돌면 숨이 좀 차던게 지금은 200m만 뛰어도 숨이 차기는 하지만.
 
 걷는다고... 계단을 오르내린다고 숨이 차지는 않지.

 지금 이 과에는.
 
 방 안에 있는 화장실까지만 가도
숨이 차다라는 증상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주된 환자군이라는 것.


 A라는 환자가 있다.

 그가 가진 질병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이라는 질환으로.
 기도의 가장 끝 부분이 좁아져 있어서.
 가래 배출도 잘 안되며 염증도 잘 생기고 하는 질환이다.
 만성이라는 말이 붙었듯이 낫는 병이 아니고 조절해야 하는 병이다.

 예 전에는 다 '천식끼가 있다'라고 표현되었던 병.
 (물론 이게 다가 아니지만 여지까지만 설명 ㅠㅠ)


 A환자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급성 발작으로 2달에 한 번은 입원하는 환자이다.
 그의 폐가 가진 능력은 거의 말기에 가까워.
 감기에만 걸려도 급성발작이 올 수 있는 상태.

 단 그의 폐기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치료로 호전이 될 수 있을 정도
 급성 발작의 원인이 되는 염증에 대해서항생제를 쓰고 
 말단기도를 열어주는 흡입치료도 하고 하면 좋아지는 것...


 문제는.
 그 동안 입원시에는 약 2주면 잘 나았음에도
 올 한해에만 근 5번을 입원해서
 이런 저런 항생제를 써서 잘 듣는 항생제가 없어
 이번에 입원해서는 잘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이 느끼는 증상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중이지만 낫지 않고 있으며
 X-ray는 하루 이틀봐서는 크게 차이는 없지만 주욱 늘어놓고 보면 나빠지고 있다는 것.
 숨소리를 청진을 해봐도 쌕쌕거리는 소리가 풀리지 않고 있는...

 지속적으로 코에 산소가 나오는 줄을 꽂고 있지 않으면
 금방 저산소증이 올 수 있고 오고 있는 상황.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이 환자는... 산소도 안 하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리고... 산소를 안 하면서 숨차다고 호소를 한다.
 
 
 "할아버지 산소를 안 하시니까 숨이 차시죠! 산소를 안 하니 가슴이 아프죠!"
 
 "아니 뭐 죄송합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음식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있을 수가 없어요."
 "예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무 차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아니 그럼 방에서 간호사를 불러야죠"
 "아니 뭐 좀 돌아다니까 숨이 찹딥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하루에 4번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방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숨차서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산소하면 좋아지고
다시 밖으로 나오고 그럼 숨차고 그럼 또 끌려 들어가고.


 거기에 주사매니아 여서.
조금만 불편한게 있으면 먹는 약도 아닌 주사를 원한다.

문제는 ...
우리가 줄 수 있는 주사라는게 크게 없다는 것이다.
흡입치료도 거의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으며.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증상 완화엔 좋은 스테로이드도 쓰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Placebo라는 것을 이용한다.
다만 이 분의 경우 먹는 약의 경우 왠만한 소화제는 다 알기에.
의사들이 먹는 약으로 Placebo를 처방할 경우 

 "아니 이 걸 내가 달라는게 아니잖아! 주사 줘 주사!"

...

 
 그럼 어쩔 수 없다.
이른 바 이야기하는 주사 Placebo를 준다.

 생리식염수를 약간 주사하면.
불과 5분도 안되서.

 "역시 주사가 잘들어... 이따가 혹시 안 좋아지면 다시 줘"

...


 분명 이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환자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며.
의사 역시 환자가 표현하는 증상에 대해서 믿음이 약해진다.
 
 

 숨이 찰때.
실제 증상 호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리 식염수 5cc면 좋아졌다고 믿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있어서 정말 아픈 환자라고 생각이 될까?


 문제는.
나와 우리 교수님이야 그 환자가 조금씩 안 좋아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환자의 증상을 엄살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간호사들에게는

만약 정말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간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가 잘 못 된 것일까? 

 내가 오늘부터. 이 Placebo라고 하는. 환자가 생각하는 명약을.

"A씨 당신이 여지껏 맞은 주사는 다 물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하며.

"당신의 병은 물론 안 좋지만 이 주사로도 증상이 좋아지는 건 그냥 기분탓일겁니다 "
"앞으로는 당신이 호소하는 증상에 있어서 필요하다 생각이 되지 않으면 물주사도 없을것입니다"
 하는 게 옳은 것일까?
 

 내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다.

Posted by 빨간까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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